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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삶의 고난 속에 피어나는 위트와 웃음

  • 승인 2021-01-25 09: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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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우산 아래서 자매 고양이들은 더 가까워졌다. 일본 와니북스 주최 사진공모전 우수작

길고양이 사진가, 진소라

  2002년 길고양이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할 때만 해도, 같은 활동을 하는 이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은 길고양이 사진가에 도전하는 이들이 제법 늘었다.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메일로 보내며 “책을 낼 만한지 검토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종종 접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경우 99%는 출판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수많은 길고양이 사진 중에 내 사진이 책으로 묶을 만큼의 차별점이 있는가’가 중요한데, 정작 중요한 그것이 없어서다. 

순간 고양이가 매화나무의 요정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 사이에서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1%의 작가가 있다. 진소라 작가가 그랬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길고양이 사진에도 유형이 있다. 길고양이의 척박한 현실에 집중한 다큐멘터리 사진, 고양이의 일상에 개입해 웃기는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해 찍는 연출사진, 그냥 일상을 툭툭 찍은 것뿐인데 흐뭇한 웃음이 흘러나오는 생활 사진.

  진소라의 사진을 분류한다면 마지막 유형쯤 될 것이다. SNS에서 우연히 접한 그의 길고양이 사진에는 고양이란 동물이 간직한 흥과 위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척박한 삶 속에서도 놀거리를 찾아내는 길고양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진을 보며, 그 너머의 작가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굴까? 길고양이를 얼마 동안 찍었기에 이런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을까? 직접 만나본 진소라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을 뿐, 사진 전공자도 아니고 특별히 사진을 배운 적도 없다고 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작년 여름이니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묘생 첫눈을 보는 고양이는 어떤 기분일까?

사진의 목적이 되어준 동네 고양이

  1년간의 도쿄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작가는 염증성 질환 진단을 받으면서 취업을 미루고 투병을 시작했다.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은 가능해졌지만 무엇에도 열정을 가질 수 없던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산 것이 디지털카메라였다. 처음엔 뭘 찍을지 몰라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딱히 목적 있는 촬영도 아니었기에 비슷비슷한 사진에 심드렁해질 무렵, 프레임 속으로 우연히 고양이가 들어왔다. 동네에서 만난 치즈색 길 고양이 뽀또였다.

  뽀또는 정신없이 카레를 먹다 몸에 묻힌 듯한 얼룩무늬가 있는 귀여운 수컷 고양이였다. 작가를 만난 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멀찍이 떨어져서 발라당을 시전할 만큼 사랑이 넘치는 길고양이였다. 아마도 밥을 주는 캣맘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모양이다.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스스럼없이 마음을 여는 뽀또를 보며 작가는 뭉클함을 느꼈다. 그리고 풍경을 향했던 카메라를 돌려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목적 없던 사진에 비로소 목적이 생겼다.

비밀 얘기를 속닥거리며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이는 뽀또와 아들 오레오.

뽀또네 가족과 공원 길고양이들

  뽀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딱히 고양이에 관심이 없었다. 한데 가만히 뽀또의 활동 반경을 지켜보니 주변 길고양이들과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관계도가 제법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중심인 수컷 고양이 뽀또, 암컷 고양이 오즈와 그 자식들인 파베, 초코, 오레오, 밤에만 나타나 뽀또와
어울리는 겁 많은 암컷 칙촉, 칙촉의 자식인 쿠키와 크림이….

  동네 고양이들의 희로애락을 기록하면서 고양이 사진 찍기가 재미있어졌다.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을 이룬다면, 사람을 특별히 좋아하는 뽀또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도 갖게 되었다. 근처 공원에서 새로운 길고양이 가족을 만나면서 찍고 싶은 고양이 모델도 부쩍 늘었다. 공원 고양이 가족은 흥이 많은 어미 고양이가 중심이 된 대가족인 데다, 사계절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공원 환경 덕분에 뽀또네와 또 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동네 고양이 촬영을 넘어 서울 근교로, 멀리 제주로도 길고양이 출사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고양이 싸움 구경.

  진소라 작가가 고양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계기를 들으면서 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몸이 아프고 너희는 삶이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웃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길고양이를 보며 희망을 발견한 작가는 ‘지금 아프고 힘들지라도, 태어난 이상 누구나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마음을 사진에 담은 게 아니었을까.

시도 때도 없이 애정표현하는 어느 포구의 고양이들.

일본 도쿄에서 사진 전시회도 열어

  세계적인 동물사진가 이와고 미츠아키의 50년 고양이 촬영 노하우를 담은 사진에세이 《고양이를 찍다》를 마음의 지침서로 삼고 꾸준히 사진을 찍는다는 진소라 작가. 평범한 거리와 동네 공원, 오래된 골목처럼 평범한 일상 공간도 그의 사진 속에서는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 한다. 길고양이가 지닌 생명력과, 그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진소라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빚어낸 ‘사진의 마법’을 그의 고양이 사진에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진에 담긴 진가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섬 고양이 사진으로 유명한 일본 길고양이 사진가 시마보스네코(@simabossneco)의 첫 사진집 《Kiss Neco》 출간을 기념해, 일본 와니북스에서 주최한 사진공모전에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지난해 8월 도쿄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cat_by_snap)에서 더 많은 사진을 접할 수 있다.

글 고경원
사진 진소라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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