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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넌 어느 별에서 왔니?

  • 승인 2021-01-28 12: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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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반려견과의 이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은
흔히들 말한다. 

‘두 번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을 거야’라고.

나의 부모님 역시 그러셨다. 2년 사이에 품에서 두 강아지를
보내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MIRACLE

  루시를 만나기 전, 사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운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단 하루도 개가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게 제니도 별이도 없는 삶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12년, 4년을 함께 해 온 두 마리의 고양이들 덕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의 환생을 다룬 영화 ‘베일리 어게인’을 보았고, 나에게도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시기의 내 일상은 매일같이 SNS에 올라오는 강아지 사진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다른 집 강아지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무심결에 본 사진에서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별 어게인” 나에게도 정말 기적이 생긴 걸까? 눈이 많이 내린 밤이었지만 단숨에 서울에서 수원으로 내려갔다. 루시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제니와 별이를 보낸 지 딱 1년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제니와 별이가 동시에 떠오르는 오묘한 느낌의 눈빛! 너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처음인 듯 처음 아닌

  제니와 별이를 떠나 보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강아지 키우는 게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건 루시가 등장하기 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루시는 집안에서 나는 소리는 물론이고 택배 아저씨 발걸음 소리, 새벽 청소차 소리, 심지어는 식구들이 외출했다가 들어오는 현관문 소리에도 일일이 반응했다. 게다가 윗집 강아지 두 마리까지 때를 가리지 않고 짖으며 루시의 심기를 건드렸다. 

  궁여지책으로 거의 모든 소리를 녹음해서 반복적으로 들려주며 교육을 했다. 당시 가족 외식은 당연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루시는 예전보다 덜 예민해졌다. 첫 생일, 케이크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루시를 보자 한 단어가 떠올랐다. ‘1년’. 딱 1년 만에 무기력하던 내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루시는 우연히 내 삶에 들어와 시들어 있던 마음을 따듯함으로 물들였다.

뜻밖의 은인

  루시는 겁이 많았다. 집에서도 내 방에 있는 펜스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그런 루시를 담요로 포옥 싸서 안고, 다양한 소음에 익숙해지도록 매일 집 주변을 짧게 돌았다. 드디어 날씨가 풀리기 시작한 2월, 온 가족이 루시의 첫 산책을 위해 출동했다.

  루시가 난생 처음으로 땅에 발을 내디딘 순간, 우리 가족은 아기가 첫 걸음마를 뗀 것처럼 환호했다. 바깥에 나온 루시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벌벌 떨다가 이내 이동 가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무슨 귀소본능이라도 있는 건지, 잘 놀다가도 가방만 내려놓으면 쏙 들어가 자리를 잡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그토록 바라왔던 일이 우연처럼 일어났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간식으로 루시를 유인하며 산책하고 있었다. 루시가 간식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순간, 공사장에서 큰 소리가 났고 깜짝 놀란 루시는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도 너무 놀란 나머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루시가 뛰다가 멈추는 게 아니라 계속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연히 마주친 공사장의 아저씨들 덕분에 루시의 본격적인 산책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루시는 산책을 나갈 때면 슬금슬금 주변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우리 가족이 곁에서 든든한 보디가드가 되어 준다면 루시도 언젠가는 용맹
한 강아지로 거듭날 거라고 믿고 있다.

  그래! 교육도 중요하지만, 루시가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쑥쑥 크는 게 가장 중요하지!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내 기대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 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기대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기대가 아닌 예언이지 않을까?

글. 사진 이희정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6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저작권은 (주)펫앤스토리에 귀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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