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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우리의 추억을 뿌려둘게

  • 승인 2021-02-17 1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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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를 좋아해 온 시간이 긴 만큼, 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입양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막상 키우면 생각과 다를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내 상상 속의 개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중 가장 놀랐던 건 크리스가 생각보다 산책을 안 좋아한다는 거였다. ‘산책 싫어하는 개’, ‘산책 안 좋아하는 개’ 같은 키워드를 얼마나 많이 검색해댔는지 모른다.

산책 싫어하는 개

  반려인의 기본 상식(?)인 1일 1산책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해뒀던 목줄과 배변 봉투를 들고나갔던 산책 첫날, 크리스는 단 한 발도 떼지 못하고 내게 안겨만 있다 돌아왔다. 바닥을 디디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크리스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혹시라도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리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 매일 꾸준히 크리스를 데리고 나갔다. 인터넷에서 다른 반려인들에게 도움도 많이 청했다. 산책을 안 좋아하는 개도 의외로 제법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간식을 가지고 나가기, 힘들어할 때는 잠깐 안아주기, 관심을 보이거나 가고 싶어하는 방향은 그냥 지나치지 않기 등 유용한 팁도 많이 얻었다. 

  그렇게 크리스는 서서히 산책에 적응을 해 나가는 듯했다. 집 앞 공원을 꽤 신나게 달리기도 했다. 나도 크리스와 함께하는 산책에 탄력이 붙어, 점점 나가는 거리와 시간을 늘렸다. 우리의 산책 적응기는 그렇게 단기간에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달렸던 날, 크리스는 다시 낑낑대며 걷기를 거부했다. 그날 이후 크리스는 다시 산책을 싫어하는 개가 되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어리석음을 탓하는 것도 잠시, 애써 다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매일 조금씩 걷는 시간을 늘려나갔고, 걷기 싫어할 때면 안고 걸었다. 그리고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크리스가 갑자기 산책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한 이유, 그리고 산책을 아직도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아마 너무 먼 곳까지 산책을 나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크리스가 집에서 산책을 출발할 때는 낑낑대며 걷기 싫어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껏 신이 난 듯 뜀박질도 곧잘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멀어지는 건 무섭지만 돌아오는 길이라면 괜찮아. 바람을 맞고 해를 쬐는 건 좋지만 집에서 멀리 가는 건 싫어’라는 크리스의 마음을 이해한 후부터, 우리의 산책길은 조금 달라졌다. 집에서 나올 때는 크리스를 안고 걷는다. 벤치에 앉아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 후 천천히 원하는 속도로 집에서 멀어졌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음껏 달린다. 그리고 이 방법을 크리스도 훨씬 더 즐긴다. 또 가끔 사람이 많지 않은 큰 공원에 갔을 때면 모두 다 잊은 채 뛰어다니는 크리스를 볼 수 있다. 아마 그때가 크리스에겐 가장 행복한 산책일 것이다.

크리스야, 걱정하지 마

  크리스는 그동안 많이 변했다. 생각해보면 크리스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을 거다. 물론 나 역시 나름의 공을 들이긴 했어도, 크리스가 겪은 격변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라 짐작한다. 무엇보다 입양의 주체는 나였고, 항상 내가 마음먹은 대로, 내 시간표대로 크리스는 따라야 했으니까.

  ‘산책 소리만 들어도 나가자며 왈왈 좋아하는 발랄한 개’를 상상한 것도 나고, 머나먼 산책 경로를 정했던 것도 나였다. 그래서 내가 멋대로 정한 길에 비록 작은 걸음일지라도 조심조심 한 발자국씩 내디뎌 준 크리스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아릿하다. 익숙한 지점에 도달하면 크리스의 꼬리가 흔들리고 엉덩이가 가볍다. ‘우리’ 집에, ’함께’ 돌아간다는 사실에 저렇게 들뜨는 크리스가 더욱 예쁘고 고맙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무서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는 길목 길목마다 과자 부스러기를 뿌려둔 헨젤과 그레텔처럼, 온 동네에 우리의 추억을 잔뜩 뿌려둘게, 크리스.

글.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6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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