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저희도 한동안 사람들이 많이 모일 법한 장소는 피하며 지냈어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교외로 나가 코르키 & 에코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아쉬움이 컸죠. 어떻게하면 안전하게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미니멀 차박’을 다녀왔답니다.
매일 너희와 함께 바다에서 마음껏 뛰놀고
별도 보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
코르키 에코의 생애 첫 차박
날씨가 점점 풀리며 캠핑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차박’은 텐트 대신 차에서 야영하는 것을 뜻하는 캠핑의 한 방법이랍니다. 보통 차 트렁크에 차박용 텐트나 타프를 연결해서 캠핑 공간을 만드는데, 이번엔 그런 장비를 전혀 갖추지 않고 차에서만 편하게 즐기다 왔어요.
제가 챙긴 준비물은 트렁크부터 뒷좌석까지 편안하게 눕도록 평탄화 작업을 해주는 매트, 따뜻하게 덮을 침낭과 이불, 차에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베드 트레이 그리고 분위기를 낼 전구, 이렇게 딱 5가지! 정말 간단하죠?
준비물도 중요하지만, 사실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규칙은 따로 있어요. 바로 캠핑장이 아닌 노지에서의 취사 행위는 불법이라는 사실인데요. 저도 당연히 식사와 음료는 모두 미리 포장해서 갔답니다.
노을을 감상하는 자세
그렇게 간단하게 짐을 챙겨 코르키 에코와 함께 서해로 떠났어요. 집에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참 감사하죠! 해변 이곳저곳을 한참 동안 물색한 뒤에야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어요. 코르키와 에코가 여유롭게 배변하고, 바닷바람 쐬는 시간을 보낼 동안, 저는 열심히 시트를 눕히고 따뜻하고 편안히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지요.
힘겨운 차박 공사를 무사히 마친 뒤 숨을 고르며 코르키 에코와 바다를 바라봤을 때, 아름다운 서해가 두 눈 가득 들어왔어요. 오랜만의 여행에 들뜬 코르키 에코는 집에만 갇혀 지냈던 그간의 답답함을 푸는 데 여념이 없었어요. 코르키 에코는 여유롭게 해변을 따라 걷다가도 갈매기 무리가 보이면 무작정 쫓아가거나, 대뜸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맘껏 뒹구는 등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했죠. 자유롭게 해변을 활보하는 코르키 에코를 보고 있자니 저도 함께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올해로 여섯 살이 되는 코르키. 해변에만 오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던 코르키가 웬일인지 이번엔 달랐어요. 코르키가 저와 발걸음을 맞추며 천천히 해변을 거닐고, 가만히 앉아서 진지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은 왠지 제 마음을 찡하게 했죠.
오랜만의 캠핑에 들뜬 코르키 에코와 저는 해변을 벗어나서 계속 걸었어요.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른 채로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차에서 멀리 떨어진 소나무길까지 와 있더라고요. 가지가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었던 배고픔이 몰려오는 게 아니겠어요? 노을이 지기 전에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차로 서둘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답니다.
계산되지 않은 행복
오늘 우리 집은 오션뷰! 노을이 물든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는 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간 느끼지 못했던 벅찬 감정이 몰려왔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코르키와 에코도 노을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생각에 잠긴 듯한 코르키와 에코의 모습은 처음이었
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평소와 사뭇 달라 보였으니까요.
저녁 식사를 하고 마지막 배변 산책을 다녀오고 나니, 주변이 어느새 깜깜해져 있었어요.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반짝거리던 서해 하늘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답니다. 며칠이고 한 곳에 머물며 감상하고 싶은 하늘이었어요.
하지만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 나머지, 다음날 가려 했던 트레킹 일정은 접어야 했어요. 곧장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 여행에 대한 기억이 유난히 머릿속에서 맴돌았어요.
제 옆에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던 코르키 에코를 떠올리자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지난 6년 동안 제 기억 속의 코르키 에코는 마냥 천방지축 장난꾸러기였는데 말이죠. (웃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었어요.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로 충분히 행복했던 여행이었으니까요.
글.사진 한민혜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6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