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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가

  • 승인 2021-03-02 1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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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소중한

  작년 9월, 조니와 함께한 지 어느덧 2개월째에 접어든 때였다. 이제 슬슬 조니의 동생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 고민하고 있던 차,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온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느 공장에서 밥을 주고 있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거둘 수가 없어 입양을 보낸다는 글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꼬물거리는 회색 고등어 아가들. 그중 단연 우리 데비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비가 꽤 많이 내리던 저녁, 데비를 데리러 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수건에 겹겹이 쌓인 데비를 내 품에 넘겨받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아주 조그맣고 조그맣던, 소중한 우리 데비. 데비는 조금 무서웠는지, 아니면 잠이 덜 깨서 그랬는지 잔뜩 발톱을 세우곤 칭얼거리다 내 옷에 구멍을 얼마나 많이 냈는지 모른다. 
 
  처음 만난 데비. 그 사랑스러움을 이기지 못해 온 마음이 간질간질했던 날. 조니와 데비를 만난 후로 내 삶이 이렇게까지 변하게 될 줄은, 이렇게 넉넉하고 커다란 마음을 지닌 내가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으리라.

모든 초점을 너에게로

  우리 집에 온 지 고작 한 달쯤 되었을까? 데비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밥도 잘 먹지 않고, 뒷다리를 덜덜덜 미세하게 떨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어떠한 단어도 문장도 떠오르지 않고
눈물부터 났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잠시, 나는 내 모든 초점을 이 작은 아이에게로 집중했다. 식욕이 없는 데비를 위해 설탕물을 타서 몇 방울 먹이기도 하고, 그래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곧바로 병원으
로 향했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는 피 검사를 한다고 다리를 잔뜩 찔러놓고는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두 번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울며불며 하루 동안 무려 병원 네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마지막 병원에서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지알디아’라는 기생충 감염이었던 것. 의사 선생님은 내 간절한 마음과 아픔에 깊이 공감해 주셨고, 2시간에 걸친 긴 검사 중에도 나를 달래주시며 최선을 다하셨다. 

  마침내 모든 검사가 끝나고 선생님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길고양이 엄마 아빠를 쫓아 길에서 고인 물을 마신 것이 원인인 것 같아요.’ 다행히 며칠 입원하고 치료받으면 금세 나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긴장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의 기억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다 주어도 괜찮아

  조니와 데비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사건이 아니고서는 크게 감정을 쏟는 법이 없던 나였다. 온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수없이 받았던 터라, 마음을 허락하는 일에 더욱 인색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아프고 슬픈 소식을 접할 때면 하루 종일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꾸만 얽매이고 얽매이다 보니 나 역시 어느 순간 ‘그냥 모른 척 하자. 그냥 알지도 말고, 보지도 말자’ 하고 되뇌게 됐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힘들고 지치는 일도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지, 괜찮아’ 하는 말로 관대히 넘길 수 있었는데,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는 유독 그랬었다.

  하지만 데비를 살리기 위해 네 군데의 병원을 돌고,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입원실 유리창 너머의 데비를 바라보던 그 순간만큼은 달랐다. 마음을 쪼개는 듯 날카로운 아픔에서 눈을 돌리지도 않았고, 내 감정을 속이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단 한 가지 사실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데비는 이미 내 아이고 가족이구나’. 이렇듯 나는 조니, 데비로 인해 조금씩 타인들에게까지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의 보금자리

  데비가 이틀간의 입원을 마치고 돌아온 날, 조니는 뛸 듯이 기뻐하며 데비 주위를 맴돌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나와 남편은 우리 역시 조니처럼 기분이 잔뜩 들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깨달음이 또 좋아서 자꾸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니는 데비에게 그루밍을 해주고 안아주는 등 데비 곁을 단단히 지켰다. 그런 조니가 어찌나 대견했는지, 간질간질 따뜻한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가족은 다시금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이처럼 조니, 데비, 나, 그리고 남편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단단히 묶여 언제나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아름답게 무르익게 하는 이곳. 바로 세상 단 하나뿐인 우리의 ‘도담도담 하우스’다.

글.사진 김보미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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