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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THE REASON

  • 승인 2021-03-05 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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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4캔을 만 원 주고 샀다. 

검정 비닐봉지를 나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얼마 만에 집 가는 길이 이리도 기분 좋았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를 찾아서

  오랫동안 묵었던 침구류를 버렸다. 이불, 침대 커버, 베개 커버를 새로 장만했다. 거기에 추가로 스마트 TV도 구입했다. 맥주를 홀짝이며 넷플릭스를 보다 벌러덩 누워 새로 산 이불과 침대 커버의 코튼 향을 맡으며 잠들 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문 앞에 서니 하맹이가 우는소리를 내며 반겨줬다. 문을 열고 들어가 하맹이를 안아준 뒤, 단숨에 침대로 달려가 누웠다. 등이 축축했다. 이불을 걷어보니 침대 커버에 동그란 물 자국이 보였다. 오줌이었다.

  이유가 뭘까? 화가 났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해봤다. 오늘 아침까지도 하맹이는 모래 깔린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봤었다. 오줌을 피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핸드폰으로 ‘고양이 침대 오줌’이라 검색했다. 이내 몇 가지 이유 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화장실 모래가 바뀌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질병에 걸려서 등등. 그러고 보니 마침 얼마 전 모래를 바꿔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내일 아침 일찍 받을 수 있도록 로켓 배송으로 입자가 고운 모래를 구입했다. 조금 전에는 화가 났지만 이유를 알게 되니 괜히 하맹이에게 미안해졌다. 하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맥주를 냉장고에 넣었다. 이제는 새것이 아니게 된 이불과 커버를 들고 코인 빨래방에 갔다. 허탈한 주말 밤이었다.

고 난이도 페이크

  커버가 벗겨진 까슬한 매트리스 위에서 눈을 떴다. 문을 열어보니 지난밤에 주문한 모래가 도착해있었다. 하맹이 화장실 뚜껑을 열고 모래를 갈아줬다. 하맹이가 옆에 와 코를 킁킁거리는 걸 보니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다음 날 아침, 하맹이 화장실 앞에 섰다. 호텔 룸서비스로 도착한 음식 뚜껑을 여는 것도 아닌데 기대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뚜껑을 열었을 때 크게 덩어리진 모래가 있길 바랐다. 놀랍게도 오줌으로 뭉쳐진 감자 두덩이 아니 모래가 있었다. 삽으로 오줌 덩이를 치우며 하맹이에게 잘했다며 엉덩이를 두드려줬다. 

  드디어 안심하고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이불과 침대 커버를 침대에 펼쳤다. 일주일 뒤 하맹인 다시 침대에 오줌을 쌌다. 그래놓곤 냉장고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나도 모르게 손가락 욕을 날려버렸다. 이유가 뭘까? 스트레스 때문인가? 하맹이는 나와 함께 카페에 출근하고 퇴근도 같이한다. 생활 공간이 두 곳이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그러기엔 하맹인 카페와 집에서 너무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잔다. 그렇다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끝나지 않은 참사

  하맹이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의사 선생님에게 침대에 소변을 봤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해왔던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어린 암컷 고양이가 방광염에 걸릴 가능성은 낮아요. 하맹이는 물도 잘 먹으니 더 가능성이 낮고요. 일시적인 걸 수도 있으니 일주일 동안 경과를 더 지켜보고 내원해 주세요.”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간 나는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시트러스 향을 분사기에 넣어 침대에 뿌리고, 고양이 배변 패드를 집에 깔아 두고, 혹 스트레스라도 받을까 쓰다듬을 때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하맹이는 사흘 뒤 시트러스 향이 나는 침대 위에 오줌을 쌌다. 병원에 내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맹인 평소처럼 냉장고 위에서 날 빤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마주한 결론

  까슬한 매트리스에서 눈뜨는 것도 이제 익숙해졌다. 언젠가 다쳤던 무릎이 쿡쿡 쑤셨다. 습도가 높은지 몸이 끈적거렸다. 요 며칠 비가 쏟아부었는데 간밤에 또 비가 내린 모양이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샤워를 한 뒤, 하맹이를 안고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문을 열자 밖이 환했다. 아스팔트 바닥엔 물기 한 방울 없었고, 하늘은 쑤셨던 무릎이 머쓱하게 새파랬다. 작은 탄성이 나왔고 기분이 풀렸다. 조만간 동물병원에 하맹일 데려갈 테지만 의사 선생님은 분명 아무런 이상 없는 진단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럼 난 속으로 선생님에게 말할 것이다. 그냥 ‘평소엔 매트리스를 세워 두는 것은 어떨까요’ 하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몇 주 동안 나는 수도 없이 ‘이유가 뭘까?’ 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스스로에게 답을 들려줄 수 있게 됐다. ‘이유는 없다’.

글.사진 양세호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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