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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컬러풀

  • 승인 2021-03-10 09:5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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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이의 우선순위

  날마다 드는 생각인데, 레옹이는 정말이지 ‘사람’ 같다. 손님이 집에 올 때면 멀찍이 떨어져서 쳐다보기만 하면서, 우리 가족 발소리는 어떻게 아는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만 들려도 와다다다 달려 나오는 레옹이. 꼭 “왜 이제 왔어?”, “뭐 하다 왔어?” 하듯 코를 들이밀며 킁킁 부비적 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우리 집 막냇동생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작 레옹이를 데려온 동생에게만은 영 반응이 뜨뜻미지근한데, 어째서일까? 레옹이에게도 가족마다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저 멀리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미세하게 아빠 발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는 정도라면, 나랑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 왔어?” 이런 느낌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귀하신 고양이님이 친히 마중까지 나와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 어디 불만이 있겠는가. 때때로 귀가시간이 늦어질 때면 어찌나 흘겨보는지 눈치가 보여 죽겠다. (웃음)

오늘도 미션 완료!

  집에서 나는 레옹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법한 몇 가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양치질, 발톱 깎기 그리고 배변처리 같은 것들이다. 레옹이는 내가 발톱깎이를 집어 들기만 해도 귀신같이 알아차리곤 식빵을 굽다가 배 아래로 발을 쏙 집어넣는데 그게 또 참 귀엽다. 

  그래서 발톱은 레옹이가 곤히 잠들어 있을 때 몰래몰래 하나씩 깎아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도중에 레옹이가 깨면 무용지물. 재빨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발톱깎이를 저 멀리 치우곤 나도 자는 척을 해야 한다.

  치열한 눈치 게임은 해가 진 뒤에도 이어진다. 하루에 한 번씩은 레옹이 양치질을 시켜주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어긋나면 레옹이가 꽁꽁 숨어버리기 때문에 민첩한 몸놀림은 필수다. 먼저 치약과 칫솔을 챙기고 레옹이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뒤, 바람처럼 빠르게 레옹이를 낚아챈다. 그다음 방으로 데려와 후다닥 양치질을 한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하고 매번 다독이지만 레옹이는 언제나 약간의 원망이 섞인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레옹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양치질까지 끝내고 나면 하루 미션을 성공한 것처럼 맘이 편하다.

좋아해서 더 서운해

  평화로운 주말,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레옹이와 늦게까지 뒹굴거리는 순간은 너무도 달콤하다. 아침부터 레옹이는 방마다 순회를 돌며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스크래처에 박박 발톱도 긁는다. 여기까지는 보통 때와 다를 것 없는 보통의 주말.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레옹이가 꼭 너구리처럼 털을 한껏 부풀리며 내 얼굴을 보며 하악질을 해댔다. 

  나중에 찾아보니, 고양이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깜짝 놀랐을 때면 꼬리를 아래로 둥글게 말면서 털을 부풀리는 행동을 한단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행동을 내 생얼(?)을 보고 했던 건지 정말 의문이다. 하도 어이가 없던 나머지 나는 ‘레옹아 나야 나, 너랑 같이 산 지 5년 된 사람이라구’라고 말해버렸다.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몇 초 뒤에야 비로소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레옹이. 

이래나 저래나 우리 가족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작년 이맘때 우리 가족은 방마다 이불을 사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레옹이의 쉬야 테러 때문. 정말이지 이불 빨래를 한 달에 10번은 했던 것 같다. 또 레옹이 취향의 모래를 찾기 위해 온갖 종류의 모래들을 사들이고 매일매일 깨끗하게 청소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쉬야 실수도 자연히 줄어들어 잊고 지냈는데, 올해 초 다시 사건이 발생했다. 방에서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레옹이가 조용히 뒤에서 이불을 파바박 긁어모으는 게 아닌가. 곧이어 풍기는 콤콤한 오줌 냄새. 또 오줌 테러가 시작되는 것인가! 우리 셋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레옹인 그 뒤론 또 제대로 화장실에 볼일을 보는 거였다. 참나, 레옹이의 마음은 정말 알 것 같다가도 하나도 모르겠다. 아마 우리가 너무 이야기에 집중해 레옹이가 섭섭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하지만 아빠보다 나를 덜 반겨줘도 언니는 괜찮아. 또 내 생얼을 보고 털을 부풀려도 괜찮아, 이불에 쉬야 해도 용서해 줄게. 물론 너무 자주는 말고 가끔씩 만이야. 대신 앞으로도 주말이면 같이 늦잠도 자고, 이렇게 재미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앞으로도 꼭 붙어 있자, 레옹아.


글.사진 이예진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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