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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마음을 여는 과정

  • 승인 2021-03-12 13: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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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의 덕목, 기다림

  길냥이인 자두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내 마음의 문은 활짝 열렸다. 그리고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자두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자두가 오지 않은 날에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언젠간 자두 역시 마음의 문을 열리라 믿으며 기다렸다. 우리 가족은 임신한 자두가 혹시나 우리 하우스에 새끼를 낳을까 싶어 하우스 곳곳에 산실을 마련했다. 그 정성을 자두도 느꼈는지, 이곳저곳을 살피며 출산장소를 찾는 듯했다. 

  그런데 자두가 출산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그 어디에서도 새끼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두의 배가 이미 홀쭉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하우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출산을 한 모양이었다.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자두와 인연을 맺은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우스 그늘막 속에서 자두의 새끼들을 발견했다. 하우스 바로 바깥쪽이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기는 힘든 곳이었다.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하우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낳기엔 우리가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하우스 안에
낳기엔 우리가 조금은 불안한,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기가 막힌 장소를 찾았는지 자두의 똑똑함에 가족들 모두 감탄했었다.

고양이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순간,

나는 슈퍼맨이 되어 모든 걸 해주고 싶었다.

“집사야, 도움!”

  4달 뒤, 자두밭에 계시던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자두가 오늘따라 조금 이상하다고 하셨다. 전화를 받자마자 자두밭으로 달려간 나는 자두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평소엔 한없이 느긋하고 여유롭던 자두가, 그날따라 하우스 천장 쪽을 계속 쳐다보며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마치 도움이 필요하다는 듯 ‘와앙’ 울며 내 뒤를 따라다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긴 한데,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때 자두가 답답하다는 듯이 하우스 지붕으로 올라가 하우스를 덮고 있던 그늘막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끼들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새끼들이 거기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다급하게 다른 밭에 가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자두의 신호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오신 아버지는 사다리를 이용해 그늘막에 매달려있는 5마리의 새끼들을 구출해 주셨다. 이제 막 꼬물거리면서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가들이 하우스 지붕 쪽으로 타고 올라간 듯했다. 새끼들이 모두 돌아온 것을 확인한 자두는 고맙다는 듯 아버지의 다리에 연신 얼굴을 비비고는 새끼들 옆에 철퍼덕 누워 휴식을 취했다.

  새끼들이 모두 지붕에 매달려 있을 때 어미 자두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가 자두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면 자두는 얼마나 불안에 떨어야 했을까. 그 다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믿고 의지한다는 뜻인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래 자두야,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얘기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똑똑한 자두는 이미 깨달았으리라. 

글.사진 권미소
에디터  조문주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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