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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MY DEAR CATS

  • 승인 2021-03-19 09: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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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긋한 귀,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오묘한 갈색 털옷을 입고 있던 너. 

언뜻 보면 사막여우 같기도 했던 

너와의 첫 만남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해.

이름

  너의 얼굴을 보자마자, ‘모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 마치 정해져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야. 커피 원두처럼 까맣고 촉촉한 코, 우아한 갈색 털옷을 입은 너에게 ‘모카’라는 이름은 잘 어울렸고, 부르기 쉬운 이름 덕분에 우린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어. 너는 영리하게도 ‘모카’라는 이름을 들으면 커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작고 동그란 고개를 돌려 ‘야옹~’ 하고 대답하곤 했지. 그렇게 내 부름에 답해줄 때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느낌을, 너는 알까?

  그저 이름을 붙여주었을 뿐인데, 너와 단단한 연결고리로 맺어진 것 같았어. 나의 첫 고양이, 모카. 부서질 듯 작고 앙증맞던 생후 몇 개월 남짓의 아깽이었던 네가 건강하게 자라 어느새 늠름한 성묘가 되다니. 이유 없이 집안을 마구 뛰어다니고 손가락을 깨물다가도 갑자기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던 아가 시절, 에너지 넘치던 청소년기도 무사히 지나줘서 고마워.

바람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걸까. 가끔 너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 아마도 이게 부모 마음 비슷한 거겠지? 나의 시간보다 너무 빠른 네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어. 만약 된다면 네 시간을 조금만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마저 들기도 해. 

  내가 그러는 것처럼 너도 가끔 나를 빤히 바라볼 때가 있잖니. 혹시 그때 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까? 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너의 머리를 쓰다듬고, 살포시 너의 등에 기대는 것처럼 작은 것들뿐이지만 그럴 때마다 행복한 골골송을 불러주어서 고마워. 나의 고양이, 모카야. 너의 일상이 늘 평화롭고 무탈하기를 바라, 너와 함께 하는 나의 일상이 그러하듯.

고백

  둘째라서 늘 모카에게 밀리는 두부야. 동갑인데도 조금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영원한 서열 2위가 되었지.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가끔 외출을 다녀오면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인 건지 묘하게 너희 둘 사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우리도 알 수 있거든. 

  사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네 이름도 모카에 맞춰 ‘라떼’가 될 뻔했었어. 네가 어렸을 때 유난히 뽀얀 털이 우유와 참 잘 어울려서 라떼로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결국 두부가 되었지만, 넌 참 어릴 때부터 생김새도 성격도 유난히 뽀얗고 몽글몽글한 느낌이 강했지. 단단한 두부보다도 순하고 부드러운 연두부 그 자체인 우리 두부. 슬쩍 들어 안으면 촤르르 쏟아질 듯 사랑스러운 너는 걸음걸이도 사뿐사뿐하고 털도 포실포실해서 이젠 두부 말고 다른 이름은 떠올릴 수가 없단다.

잔잔한 사랑

  사실 고백하자면, 애교도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모카와 달리, 도도함 그 자체인 너에게 가끔 모진 소리도 했었어. 너는 왜 모카처럼 애교가 없느냐고. 생각해보면 넌 줄곧 너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는데 내가 잘 몰랐던 것 같아. 모카가 잘 때 몰래 다가와서 몰래 말을 걸거나 조금 어색해 보이는 애교를 부리는 네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내가 널 몰라줬구나’ 싶더라고.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너무 쉽게 골골대는 사랑둥이인 널 왜 몰라줬을까? 맨날 첫째에게 밀리는 둘째의 설움을 나도 같은 둘째로서 잘 아는데 말이야. 하하. 너에겐 격한 표현보다도, 잔잔한 사랑을 주고 싶어. 늘 곁에 있다는 안도감과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편안함을 말이야. 나의 두 번째 고양이 두부야, 오래오래 너의 행복한 골골거림을 듣게 해줘.

네 이름을 부른 그 순간부터

자그마한 인연의 꽃망울이 피어났다.

글 이수현
사진 최상원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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