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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마음을 읽어주세요

  • 승인 2021-03-26 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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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들어왔다. 

“으악! 여보!” 

나의 비명에 종종걸음으로 뛰어오는 건 

남편이 아닌 바로 자몽이었다.

초여름의 벌레 소동

  분명 봄이 오기 전 창틀마다 방충망을 꼼꼼하게 설치하기로 약속했던 것 같은데, 계절은 어느덧 여름 초입. 문제의 그 작고 검은 점 하나는 여전히 거실 한가운데서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편 자몽이는 자신이 고양이란 것도 잊은 듯 우다다다 하고 뛰어와 힘차게 앞발을 휘둘렀다. 마치 새 장난감이라도 생긴 듯 한껏 신이 난 표정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자몽이는 그런 엄마와 노는 것이 즐겁다는 듯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벌레로 드리블을 해댔다. 소파 밑으로 들어가 버릴까 창틈에 끼어버릴까, 아니면 저 작은 벌레가 우리 집 어딘가에 숨어버릴까, 나는 여전히 두 손을 꼭 맞잡고 자몽이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오빠! 빨리 와서 저것 좀 치워줘! 자몽이 저러다 먹겠어. 난 이제 자몽이랑 뽀뽀도 못 할 거야(흑흑).” 하며 징징거리고 있으니 어느새 남편은 휴지를 팔랑팔랑 흔들며 다가왔다. 오빠는 익숙한 듯 휴지로 벌레를 잡곤 내게 내미는 시늉을 했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으로 벌레를 싫어하는 나를 놀린다. 그리곤 자몽이에게 “엄마 때문에 자몽이 장난감이 없어져 버렸네~ 자몽이는 아빠랑 놀자!”하고 괜히 내 탓을 한다.

자몽이의 시선으로

  자몽이가 장난감 상자를 뒤적거렸다. 자몽이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상자 안은 언제나 온갖 종류의 장난감들로 가득하다. 그러다 자몽이는 어느새 창문 아래 자리를 잡더니 햇볕을 쬐며 물끄러미 창문 너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그렇게도 열심히 보고 있을까? 하지만 의문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창밖으로 새가 날아다니거나 작은 벌레가 들어온 날, 아니면 내가 머리끈을 잠시 떨어뜨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몽이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장난감을 선물받은 듯 기뻐했다.

  지난주에 잔뜩 사 온 캣닢쿠션, 카샤카샤, 커다란 캣타워까지…. 하지만 자몽이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와 같은 다양하고 새로운 장난감이 아니었다. 대신 우리의 체취가 스며있는 머리끈이나 바닥에 놓인 옷가지들, 창문 너머 세상 모든 것들이 자몽이에게는 더 큰 즐거움이자 포근한 쉼터였다. 분명 울음소리 하나만으로도 배가 고픈지, 피곤한지, 화장실이 더러운지 다 맞출 수 있다고 자신감이 붙어가는 집사였는데, 자몽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커다란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외로움이 묻어있는 것만 같아 어렴풋이 서글퍼지는 오후였다.

앞으로도 우리는

  자몽이와 함께한 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생애 첫 반려묘 자몽이. 그만큼 걱정도 준비도 많이 했고, 행복한 삶을 선물해 주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옛날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이 속담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열 길 사람 속은 알아도 한 고양이 속은 모른다고. 

  집사 타이틀을 단 지 2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자몽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자몽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우리 부부가 앞으로도 쭉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숙제일 것이다. 내 사랑과 관심에 충분함은 없다고, 그리고 언제나 자몽이에게 부족함 없는 친구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단다. 동생 자두가 태어나도 우리의 첫째는 항상 자몽이 너야. 지금처럼만 곁을 지켜주렴, 자몽아.

글.사진 김성은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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