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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당신이 지나간 자리

  • 승인 2021-03-29 1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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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와 가족, 그리고 우리 고양이들은 예기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에도 다행히 아픈 곳 없이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경제적인 타격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캣타워를 만들다

  손님도 없는 식당에 앉아 그저 넋만 놓고 있을 순 없기에, 뭐라도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고양이를 위한 정원과 집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밥을 주고 있는 아이들은 수년간 상자에서 생활해왔습니다. 상자는 바람도 막아주고 보온 효과도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가 내리면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버린다는 것이 큰 흠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이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좋은 집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해왔는데, 드디어 시간이 생겨 ‘DIY 캣타워’를 만들어 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처음 만들어본 캣타워라 그런지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못생기고 엉성한 완성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께서 ‘드디어 고양이들이 출세해서 호텔도 생겼네~’ 하고 칭찬해 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만 문제는 정작 고양이 녀석들은 캣타워가 맘에 안 드는지 계속 상자에만 쏙 박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름쯤 뒤, 드디어 호기심이 생겼는지 농심이가 먼저 캣타워 2층에 자리 잡더니 다음 날은 촌닭이가 3층, 그리고 그다음 날은 도가니가 농심이와 2층에서 같이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사슴이는 아직도 캣타워에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하여 다음번에는 사슴이 전용 단층집이라도 만들어줘야겠다 싶었습니다.

정원이 좋은 꿍디

  2월부터 4월 간 참 많은 게 변했습니다. 캣타워도 만들고 예쁜 정원도 가꾸고, 산에 산책길도 만들고 가정집 방도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중 가장 맘에 드는 건 바로 정원을 꾸민 일입니다. 왜냐하면 꿍디가 새로 꾸민 정원에 상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쓰는 창고나 산속에 들어가 잠을 자던 녀석이 집 테라스와 정원에서만 머물고 있는데, 이젠 완전히 집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가 되었달까요. 특히 엄마가 만든 딸기, 오이밭 위치는 어떻게 알았는지 거기에만 변을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밭에 거름을 주면서 착실히 밥값을 하겠다는, 꿍디의 보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들엄마와 도가니

  오랫동안 우리 가족 곁을 지켜주며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도 선사해 준 ‘애들엄마’(고양이 이름)와 ‘도가니’는 지나간 세월 앞에 선 촛불과도 같았습니다. 특히 평소 경계심이 심하던 애들엄마는 낯선 이가 다가오더라도 도망가지 않을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해졌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15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양이의 삶을 끝내고 얼마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비록 밥을 줄 때만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왔던 애들엄마지만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러웠는데, 마음 한 편이 공허했습니다.

  애들엄마가 처음으로 출산한 아이인 도가니도 이젠 열 살이 넘어 매년 고비를 넘기고 있습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제 무지개다리를 건너겠구나’ 싶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참 다행이었습니다. 다만 나날이 지병이 늘어나는 건 막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어지러운 때에도, 부디 길 위의 모든 고양이가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사진 안진환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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