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루시의 2차 접종을 위해 처음으로 동물 병원에 방문했을 때였다. 접종을 마친 뒤 수의사 선생님은 부작용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루시를 2시간 동안 맡길 것을 제안하셨다. 이 작은 아이를 떼어놓으려니 불안했지만 혹시 모를 응급 상황을 대비해, 나는 결국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이 작은 생명체는 우주보다 큰 존재감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루시의 부재
혼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루시가 늘 누워있던 자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때 느꼈던 공허함은 나로서는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심지어 원래 함께 살던 고양이들도 루시를 찾는 것처럼 계속 돌아다녔다. 그렇게 2년보다 길게 느껴졌던 2시간이 지난 뒤, 나는 루시를 데리러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루시에게 별 문제가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 작은 꼬맹이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는 걸 보여주듯이 우릴 보자마자 꼬리펠러를 열심히 팔랑거리며 반겨주었다. 그제야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루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갑자기 루시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새벽 내내 루시의 곁을 지켜야 했다. 새벽 세시, 루시의 몸은 뜨거워졌고 끊임없이 설사를 했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루시는 어느새 힘없이 문지방에 엎드린 채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루시의 처음 보는 모습에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다들 무서워하는 파보는 아닐까….’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그 병과 관련된 것들을 검색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안 좋은 생각은 더 심해져만 갔고, 급기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만난 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도, 이제 루시가 없는 삶은 1초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깨발랄하게 뛰어다니던 예전의 루시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해가 뜨자마자 나는 루시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 여러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도 루시는 스트레스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혹시 루시는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두고 떠나버린 줄 알았던 건 아닐까? 그날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루시와 우리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일은 없도록 할거라고.
변하지 않는 것
여러 견종을 키워 봤지만 닥스훈트는 처음이었다. 루시는 SNS를 뒤져 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운명 같은 녀석이었다. 모색이 특이하다 보니 부모님은 처음 루시를 보자마자 골든 리트리버 새끼가 아니냐고 물었고, 외출했을 때는 누구나 한 번씩 뒤돌아볼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특이한 만큼 어딜 가도 루시와 같은 종의 친구들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결국 나는 SNS 계정을 만들어 닥스훈트의 개미지옥 같은 매력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로 했다. 덤보처럼 펄럭이는 귀나 자랄수록 점점 길어지는 허리를 나만 알기에는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루시는 하루하루 점점 더 사랑스러워졌고, 나는 그런 루시의 변화무쌍한 성장기를 보며 커다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하나의 암초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추운 겨울에도 사회화 교육을 한답시고 매일 루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어디선가 배운 대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루시는 여전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웃긴 건, 집에서는 고양이들에게 방구석 여포처럼 굴다가도 밖에만 나가면 다른 개들을 피해 다니거나 벌벌 떠는 것이었다. 그러다 또 길고양이를 만나기라도 하면 반가워하며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뭐야? 네가 고양이인 줄 아는 거야?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와 둘째가 사회화 교육을 했던가? 아니었다. 제니와 별이는 그냥 원래부터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깨달았다. 타고난 천성은 교육으로도 쉽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루시에게도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바로 버디! 버디는 이웃에 사는 블랙탄 닥스훈트인데 우리 루시가 유일하게 친구로 허락한 귀여운 아가씨다. 게다가 버디 견주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만날 때마다 그분 옷에 실례를 범하기도 한다. 루시와 버디가 나란히 걸으며 그 멋진 빗자루 꼬리로 온 동네를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절로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도 무한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 중!
루시에게
작고 하얀 눈송이 같던 널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반. 너와 나의 시간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가능한 일인 걸 알기에, 오늘도 난 너에게서 하루의 소중함을 배우고 또 매일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다짐했던 것처럼 너의 생이 다하는 그 날까지 널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꼭 지켜줄게. 루시야, 넌 우리 가족의 소중한 보물이란다.
글. 사진 이희정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