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제주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여러 해. 아직은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터라 매일이 즐겁고 새롭기는 하지만, 가끔은 가슴이 답답하고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이지만요. 예를 들면, 올 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로 인해 제주 밖 다른 도시로 맘 편히 오고 갈 수 없게 되었을 때나 당장 육지에 있는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아, 이 곳이 섬이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하죠.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개 딸들은 어느새 벌써 어엿한 숙녀가 되었답니다. 써니는 4살, 레이는 3살 반, 제이는 3살이에요. 사실 전 얼마 전까지 심각하게 슬슬 우리 개 딸들을 시집 보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 했었는데요, 육지로 짝을 찾으러 보내는 것까지는 어째저째 가능할 지 몰라도, 다시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불가능하더라구요. 임신한 강아지는 항공사에서 탑승허가를 내 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또 ‘아…이 곳이 참말 섬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지요.
some
물론 제주에도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를 키우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괜히 또 엄마 마음에 아무데나 시집 보내기는 싫고 막 그런 거 있잖아요?(웃음) 한 번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모임에도 가 본적이 있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셋이서만 오순도순 지내서 그런지 다른 강아지들에게는 특히 예민하게 굴더라구요. 사회성이 부족한 걸까요? 특히나 다른 견종인 친구들을 만나면 세상 사납게 구는 세 개 딸들. 애들아! 너희는 썸 타고 싶지 않니?
괜시리 제주로 이사 와서 개 딸들 창창한 앞길을 막나 싶은 그런 생각도 들고, 아이들 배 아파 낳은 새끼들을 입양 보내야 할 즈음이 되면 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차라리 시작을 말아야지 싶기도 하고, 매일 견상궁 머리 속은 왔다 갔다 온갖 생각들과 썸을 타고 있네요.
sum
써니+제이+레이=?
개 딸들 셋을 합치면 뭐냐구요? 사랑 한도 초과, 아련미 폭발, 텐션 업, 미친 매력, 출구 없는 블랙홀. 말해 무엇 하겠어요?(웃음)
이렇듯 우리의 우연한 만남이 만들어낸 합계의 시너지는 끝이 없는 무한대랍니다. 사실 매일 딱히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늘 산책하고, 밥 먹고, 간식 기다렸다가 또 산책하고, 낮잠 자고, 밥 먹고, 우다다 한 번 했다가 엄마 쓰담쓰담 쟁탈전도 벌이고. 매일이 거의 똑같은 일상이지요. 하지만 개 딸들 입 쩍 벌리고 하품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 세상 모르고 네 발 쭉 뻗고 꿀잠 자는 모습에 엄마 미소가 절로 번지고, 산책로에서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다다 신나게 뜀박질하는 녀석들이 또 신기하고, 그러다가도 곧 지쳐선 헥헥거리는 저질 체력이 우습기도 하고.
8월. 이번 여름에도 제주 견상궁네 하우스에는 사랑이 온통 가득하답니다.
글 김윤정
사진 이성훈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