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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MY NAME IS 통키

  • 승인 2021-04-16 10: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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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0월 10일. 내가 스무 살이던 해, 뽀순이가 태어났다. 고모네 시추가 새끼를 낳았는데, 다른 녀석들은 다 입양을 가고 가장 몸집이 작았던 뽀순이만 남았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함께 산 이후로 떨어져 지낸 적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뽀순이는 분명한 내 동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착했던 강아지

  8년 뒤, 뽀순이가 많이 아팠다. 그리고 어느 날, 좋지 않은 예감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뽀순이는 이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의사는 안락사를 말했다. 거절하기에는 괴로워하는 뽀순이에게 해 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뽀순이가 좋아하는 해를 보게 해주겠다며 입원실 문을 연 뒤 “뽀순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 순간, 뽀순이는 눈을 뜨고 온 힘을 다해 일어나 나에게 안겼다. 기적이었다. 뽀순이는 그렇게 내 품에서 따스한 햇빛과 바깥공기를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뽀순이는 정말 착했다. 어떠한 말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10년만에 내게 온 너

  시간이 흘러 2016년 1월,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어디선가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덜컥 데려왔다. 하얗고 뽀얀 스피츠,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화가 났다. 어떻게 상의 한 마디 없이 강아지를 입양해 올 수 있느냐며 따졌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남자친구도 나름대로 깊게 고민을 한 뒤 내린 결정 같았다. 뽀순이를 보내고 무척 힘들어하는 오랫동안 지켜보았기에, 곧 결혼도 앞두고 있으니 새로운 가족을 맞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화가 났지만 어떻게 하랴. 이미 데려온 것을.

  녀석에게 ‘통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운동량이 많기로 유명한 스피츠답게, 통키는 하루 세 번은 산책을 나가야 겨우 만족할 만큼 활발했다. 새삼 우리 뽀순이가 얼마나 착하고 얌전했는지를 느끼게 됐달까? 그렇게 한 달 뒤, 남자친구로부터 뜻밖의 사실을 들었다. 글쎄 통키의 생일이 10월 10일이라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어떤 강렬한 느낌이 뒤통수에 팍 꽂히는 것만 같았다. 뽀순이 너 혹시, 정 반대 성격으로 10년 만에 다시 엄마한테 온 거니?

특별하게 추억하고 싶어

  물론 서로 다른 강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종종 뽀순이와 통키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산책도 더 자주 나가고, 사진도 찍어주며 통키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또
사진을 인화해 벽에 걸어두거나 통키만의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함께한 순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간직할 수 있을까?   고민을 품은 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한 애견 전문 스튜디오의 모델로 우리 통키가 발탁되는 행운이 생겼다. 바로 그때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들 눈에는 모든 강아지가 비슷해 보이겠지만, 생김새부터 성격, 좋아하는 간식까지 모든 게 다르다. 그리고 그 모든 특징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나눈 반려인만의 특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특권’을 조금 더 특별하게,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남겨 보자. 사람에게도 이력서, 포트폴리오가 있듯이, 통키에게도 통키만의 프로필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멍로필(멍멍이 + 프로필)’의 시작이었다. 

멍로필의 시작

  완성된 프로필을 액자에 걸어 놓으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집 안에서의 통키의 존재감도 더욱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통키를 시작으로, 많은 분이 멍로필 제작을 의뢰해 주고 계신다. 이미 떠나 보낸 아이를 추
억하고 싶으시다는 분, 아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으시다는 분 등. 강아지들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특징도 어찌나 다른지, 소심하고 낯을 가린다는 아이, 언제나 탈출을 꿈꾼다는 아이, 도도하고 새침해
서 깍쟁이 같다는 아이 등. 그리고 그 모든 특징에 반려견을 향한 보호자의 애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웃음짓게 된다.

  물론 나는 ‘멍로필’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상품은 아니다. 아이들의 특징을 읽고 사진을 편집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집 안 거실에 놓인 멍로필을 볼 때마다 보호자들이 한 번이라도 더 반려동물을 떠올려주기를, 무거운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반려동물의 곁을 단단히 지켜 주기를, 우리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기를, 하고 말이다.

  내가 뽀순이를 보냈던 것처럼, 언젠가 우리는 이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은 반려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추억을 쌓고, 또 간직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에 조금이라도 더 담담히 ‘안녕’을 말하기 위해서라도.


글.사진 박지윤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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