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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 승인 2021-05-06 09: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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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했다. 그간 내게 신경을 쏟느라 고생한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내 나름의 선을 정해 엄마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왔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 엄마’ 또는 ‘때때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몇 년 뒤, 내게도 다시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몸만 어른인 우리

  어느 날, 또복이를 안고 있는데 또복이와 앙숙인 용복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자 겁이 많은 또복이는 발버둥을 쳤고, 또복이의 날카로운 발톱은 내 새끼손가락에 꽤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에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건 엄마였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내가 잠시 엄마 곁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는 마치 엄마 잃은 고양이마냥 축 처져 있었다고 한다. 겨우 이틀 동안이었지만 나는 엄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도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반면 우리 네 마리 고양이는 갑자기 사라진 엄마 때문에 불안한 이틀을 보냈을 거다. 집에 돌아오니 용복이, 또복이, 행복이, 금복이는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앵앵, 앙앙’ 투정을 부렸다.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는 모습이 꼭 ‘왜 이제야 온 거야?’ 하고 서운함을 표시하는 것만 같았다. 녀석들은 이제 나이로 치면 모두 어른 고양이인데, 알고 보니 몸만 어른인 아기 고양이였나 보다.

  우리 엄마도 다 큰 딸 병간호와 천방지축 손자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터다. 하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고, 자신도 오랜만에 ‘엄마’일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에 울컥 눈물이 났다. 엄마 앞에서는 언제든 철부지 어린아이로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맘속 케케묵은 휴지통을 비워낸 것처럼 후련해졌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마찬가지다. 24시간 오직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들 때문에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나를 엄마로 여기고 엄마로 살게 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삶을 살아갈 힘을 되찾는다.

보석 같은 금복이

  막내딸 금복이는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보석 같은 아이다. ‘반짝반짝’이라는 단어가 찰떡처럼 잘 어울린달까. 아직도 금복이에게 젖을 물리는 행복이의 사랑은 말하자면 입이 아프고, 아기 집사 때때도 먼저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여동생 금복이를 사랑한다. 말문이 조금씩 트이고 있는 때때는 곁에 누운 금복이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만지며 재워주기도 한다. 서툰 발음으로 “누운(눈), 코오(코), 이입(입), 꼬디(꼬리)” 또는 “토닥토닥, 코오~자” 하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아직은 손길이 거친 세 살배기 남자 아기가 겁도 나고 불편할 텐데, 기꺼이 곁에 머물러주는 금복이의
마음이 참 곱다. 또복이는 요즘 용복이와 행복이의 갑작스러운 경계 태세로 홀로 안방 생활을 하는 중인데, 먼저 다가가 ‘우다다’를 하며 함께 놀아주고 안정을 주는 것도 언제나 금복이다. 금복이는 온종일 총총총 바쁘게 움직이는데, 바라보고 있으면 아주 그냥 절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는 1가구 1금복이 도입이 시급하다’고 남편과 진지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얼굴도 마음도 모두
다 예쁜 막내딸 금복이는 우리 집의 피로회복제다.

육아 육묘 졸업을 꿈꾸며

  아기 집사가 신생아일 적엔 아기 집사에게만 집중해야 했으므로 고양이에게 늘 미안했고, 아기 집사가 기어 다닐 때쯤엔 털 뭉치 속 조금은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게 해 때때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아기 집사가 걷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피하기 바빠진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시기가 다시 찾아왔었다. 때때는 걸핏하면 고양이 밥을 뺏어 먹고 화장실 모래로 장난을 쳤다. 그땐 고양이도 나도 완전히 신경이 곤두서, 날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때때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조용한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게 된 아기 집사 덕분에 고양이들도 한결 편안해졌다. 언제나 그렇다.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반드시 지나가고야 만다. 때때와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내년 즈음에는, 어쩌면 나도 육아 육묘 졸업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사진 강은영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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