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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고양이와 함께 이사하기

  • 승인 2021-05-10 10: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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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는

  여섯 마리 고양이의 반려인이 되어 지금의 집에 정착하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독립을 시작한 탓에 1~2년마다 여기저기로 이사를 하곤 했던 나는 항상 고양이들을 위한 집을 선택했다. 8년째 동거 중인 첫째 고양이 ‘생강이’는 과거 나와 함께 작고 좁은 원룸을 전전했다. 지금 나는 맘껏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과 큰 창이 있는 넓은 이층집에 살고 있지만, 가끔 예전 생각에 잠길 때마다 생강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그 시절, 우리는 함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우연한 만남

  길 생활이 꽤나 고되었는지 나 좀 데려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던 고양이. 나는 녀석을 얼떨결에 덥석 안아 들고 집안에 데려와 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작은 원룸이 답답할 만도 한데 당시의 생강이는 누구보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당시 나는 가스레인지 밑에 세탁기가 있고, 빨래 건조대를 펴면 방이 꽉 차는 원룸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생강이는 좁고 좁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풍경을 구경할 줄 아는 의젓하고 기특한 고양이었다.

  그렇게 원룸 생활을 한 지 두 어달 지났을 무렵, 나는 생강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더 큰 원룸으로 이사 계획을 세웠다. 발품을 팔아 고양이를 반려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집을 찾았고 이사를 했다. 이사와 동시에 캣타워와 캣워크를 설치해 생강이가 수직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리고 변화

  아뿔싸. 고양이는 고양이를 불러온다고 했던가. 이사를 한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정말 많았다.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며 사비로 중성화를 시키기 시작한 후부터 다친 고양이들을 치료해주는 일도 함께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부러진 아이, 길에서 살기 힘든 아이를 한 마리씩 집에서 돌보게 되었고 어느새 4마리의 고양이를 반려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이사를 해야 했다. 네 마리 고양이와 사람 한 명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 서울에서 내가 가진 보증금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었다. 한 번도 서울을 떠나 살아보지 못했던 내가 4마리의 고양이들을 위해 선택한 곳은 남양주의 외진 호숫가 마을이었다. 창밖에 오리들이 헤엄치는 호수가 보이는 그림 같은 집.

  원래 펜션으로 운영하던 곳을 세놓았다고 했다. 고양이들을 데리고 이사할 때에는 크게 두 가지 옵션이 있다. 고양이 호텔에 맡기는 방법과 고양이들을 이사할 집에 미리 데려다 놓고 이사를 끝내는 방법. 나는 늘 후자를 선택했다. 고양이들과 함께 새로운 집에 도착해 작은방을 대충 청소한 뒤 화장실과 밥그릇 물그릇을 놓아두고 고양이들을 풀어둔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이삿짐들을 거실에 풀고 차근차근 이사하는 것이 제일 편했다.

다시 시작된 인연

  남양주의 집은 정말 넓었다. 창밖 호숫가의 무지개와 낚시하는 사람들, 오리와 철새들을 구경하며 나와 고양이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도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도 길고양이가 있었기에 창밖에 급식소를 만들어 사료를 함께 나눠 먹으며 조용한 호숫가 라이프를 즐겼다. 

  그렇지만 운전면허가 없었던 내겐 외진 곳에 있었던 집은 꽤 불편했다. 주변에 마땅한 동물병원 역시 찾기가 어려웠고, 외부와 고립된 삶을 사는 것에 조금씩 지쳐갔다. 결국 나는 남양주 생활을 청산하고 홍대로 이사를 결심했다. 고양이들을 생각해가며 차곡차곡 열심히 모았던 돈으로 서교동의 작은 투룸을 얻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곳에서도 행복할 거야

  과거의 나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진 것에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무슨 마음으로 그리 무모하게 살았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고양이들에게만큼은 항상 내 전부를 쏟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지만.

  이사를 하며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의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사회생활을 하며 다치고 움츠러들었던 나의 마음을 토닥여주고, 살아갈 힘을 얻게 해주었던 내 고양이들. 나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인연을 쌓아 고양이 여섯에 사람 둘, 여덟 식구가 되어 따뜻한 이 집에 정착했다. 특별할 것 없었던 나를 믿어주고 함께 살아줘서 고마운 내 고양이들. 앞으로 또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히 그곳에서도 행복할 거야.

글.사진 장경아
에디터  조문주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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