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C. 온기를 담는 렌즈

  • 승인 2021-05-14 10: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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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의 젊은 나이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한창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13년 8월, 갑작스레 뇌출혈이 왔다. 응급실에서 빠른 대처를 받지 못한 나는 무려 3번의 뇌 수술을 견뎌내야 했다. 6개월 뒤 후유 장애 없이 무사히 퇴원했지만 몸과 마음은 결코 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내게 고양이를 키워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말을 꺼냈다.

변수

  길냥이들 밥을 챙겨주는 것과 가족이 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당연히 고민이 됐다. 그런데 얼마 뒤, 지인이 집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지인이 교통사고로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구조했는데 입양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캐논이는 그렇게 내게 왔다. 하지만 길냥이들 밥만 챙겨줄 줄 알았지, 사실상 고양이에 대해 아는 전문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책을 사 읽거나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지인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한동안은 캐논이를 잘 돌보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며 정말 바쁘게 살았다. 그 과정에서 우울했던 지난 시간을 잊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많았다. 캐논이를 잃어버렸다가 일주일 만에 극적으로 다시 찾기도 했고, 그 후 의기소침해진 캐논이를 위해 둘째 니콘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사실 캐논이와 니콘이의 합사는 마냥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사전에 충분히 합사 공부를 하지 않아 벌어진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캐논이와 니콘이는 지금까지도 서로 하악질을 하고,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한다. 뭐, 물고 할퀴면서 싸우지는 않지만, 서로 그루밍을 해주거나 안고 자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변화

  책임져야 할 식구가 많아진 만큼, 두 어깨도 당연히 무거워졌다. 하지만 온전치 않은 몸으로는 원래 직업으로 돌아가기 힘들었다. 마침 그 시기에 나는 취미로 사진을 한창 찍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가는 고양이 사진관’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반려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고양이를 찍어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들어오는 일의 수도 줄었고,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입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돈을 받고 촬영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자, 그제야 순수하게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찍어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뒤, 나는 부산시 반려동물 문화복지센터에서 재능기부로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가로 활동하게 됐다. 그리고 현재는 해운대 유기동물 입양센터에서 재능기부 촬영을 하고 있다. 센터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많기에, 자연스레 모든 아이를 촬영하고 있다. 아이들의 순간들을 찍다 보면 정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특히 내 사진으로 좋은 가정에 입양을 간 아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는 더욱 그렇다. 

만남을 기대하는 이유

  요즘 나는 이웃 캣맘과 함께 새끼 고양이들을 구조한 뒤 입양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새 가족을 만난 새끼 고양이만 무려 네 마리나 된다. 얼마 전에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는 사람의 첫 입양을 도와준 적도 있었는데, 그분을 보며 반려동물 문화가 점점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은 언제나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을 후회 하지는 않으려 한다. 현재 내 삶은 캐논이와 니콘이, 그리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연을 선물해주는 기쁨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집사도, 사진가도 처음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재능기부 촬영을 통해 반려동물 입양에 도움을 주고 싶다. 

  그리고 감히 바라본다. 많은 이들이 사진 속 아이들의 작고 따뜻한 영혼을 포착할 수 있기를. 더불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연, 운명 같은 변수를 만들어 줄 수 있기를 하고 말이다.

글.사진 신희정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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