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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인연은 우연히

  • 승인 2021-05-17 09: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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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우리 학교 학생들이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다. 또한 길고양이들 역시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묘한 균형을 이루며 지내던 2017년의 봄, 새로운 고양이 한 마리가 학교에 반향을 일으켰다.

포스텍 직진묘 칠팔이

  ‘칠팔이’. 우리 학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78계단’ 주변에 상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칠팔이는 등하교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길을 막고 다짜고짜 애교를 부렸다. 낯선 고양이의 애정 공세에 학생들의 마음은 금세 활짝 열렸다. 

  지나가다 칠팔이를 만나면 주저앉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어디선가 츄르를 구해와 하나씩 먹이기도 했다. 혹 칠팔이가 굶지는 않을까, 소금기를 뺀 참치 통조림과 물을 주고 가는 이도 있었다. 식빵을 굽고 있다가도 필자를 보면 달려와 애교를 부리며 늦은 밤 공부로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도 했다. 어쩌면 칠팔이는 단지 먹을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칠팔이는 새끼 고양이 ‘오륙이’를 마치 자기 자식처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륙이는 일찍 엄마 고양이로부터 떨어진 녀석이었는데, 칠팔이에 새끼 고양이까지 나타나자 학생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학생들의 서툰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일까, 칠팔이는 어느새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건강까지 악화하여 결국 한 대학원생분께서 칠팔이와 오륙이를 함께 입양하기로 하셨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안녕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등장! 뉴페이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작년 봄, 또 다른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제관 앞에 항상 엎드려서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먹을 것을 내놓으라던 냥아치의 이름은 ‘노벨이’. 이름의 유래는 명확지 않다. 칠팔이의 부재를 아쉬워하던 많은 학생은 노벨이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한층 성숙해진 학생들 덕분일까? 노벨이에 이어서 더 많은 고양이의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반이, 고등어 듀오가 그중 대표적이다. 사람을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고, 둘이 매일 치고받고 까불면서 노는 것이 특징이다.

  노벨이를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한 직원분께서 검은 헬멧을 쓴 한 괴한이 국제관 앞의 노벨이를 발로 차고 괴롭히는 것을 목격했다. 깜짝 놀란 직원분이 노벨이를 부르며 달려가자, 그 괴한은 노벨이에게 스프레이를 뿌리고 도망갔다고 했다. 노벨이를 진찰한 수의사는 그 스프레이 성분이 몸에 굉장히 해로운 ‘시너’라고 전했다. 천만다행으로 노벨이는 금세 나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사람에게 큰 트라우마를 얻은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노벨이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언제나 지금처럼만

  최근 노벨이는 길고양이의 숙명과 다름없는 구내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진찰 결과, 무지막지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 혼자 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금액이 청구되었다. 그렇게 노벨이의 진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소액의 모금을 받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보태 주었다. 덕분에 노벨이의 병원비는 물론, 사료도 더욱 좋은 것으로 바꿔줄 수 있게 됐고 행여나 다른 고양이가 병원 신세를 지더라도 감당할 수 있게 됐다.

  수많은 포스텍 구성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우리 고양이들. 오랫동안 학교 안에서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사진 박종현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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