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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묘연한 가족

  • 승인 2021-05-24 10: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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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를 반려하기 전에는 묘연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반려동물을 평생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마음이 가는 아이와 함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와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고양이 사진에 저는 제 두 눈과 마음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봄 그리고 여름

  그 아이를 본 순간, 영화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당장 만나고 싶었지만,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에 조금 더 고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고, 불안감인지 무엇인지 모를 묘한 감정까지 들었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따스한 봄날을 닮은 버프, 싱그러운 여름날을 닮은 두부와 가족이 되었지요. 맑은 하늘을 노을이 선홍빛으로 물들이던 날, 저희의 묘연은 시작되었습니다.

기다림의 이유

  일터에 간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버프와 두부는 좋아하는 창가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주로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를 구경하지요. 하지만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중문 앞으로 달려 나와 왜 이제 왔느냐며 저를 다그칩니다. 

  그리고는 반갑다는 듯이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고, 열심히 고양이 세수로 꽃단장하며 꼬리를 한껏 치켜올립니다. 온종일 일하느라 집을 비운 집사가 밉기도 할 텐데, 매번 고생했다는 듯이 마중 나와주는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동시에 고마운 마음
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종일 집에 있는 날, 두부와 버프는 확실히 평소와는 다릅니다. 아닌 척하지만, 제 눈에는 사실 어느 때보다도 들떠 있는 모습이 보이지요. 그런 날에는 창가 자리도 마다하고, 꼭 제 주위나 옆에 딱 붙어 낮잠을 청합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잠에서 깰까, 저는 화장실까지 참아가며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런 제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프는 깨자마자 놀아 달라거나 쓰다듬어 달라며 아기처럼 저를 보채지요. 그렇게 아이들과 놀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야속하게도 훌쩍 흘러가 있습니다. 그 좋아하는 낚시 놀이보다도 저와 함께하는 시간을 훨씬 더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볼 때면, 왜 이리 주책없게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묘연’한 나날들

  남집사와 매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버프, 두부가 우리 집에 있는 게 너무 신기해.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너무 소중하고 감사해. 고양이들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으~ 생각도 하기 싫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행복인데.”

  쌔근쌔근 나지막한 숨소리를 내며 낮잠을 청하는 모습도,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깜박이며 눈인사를 해주는 것도, 쓰다듬으면 그르릉 소리를 내고 배가 고프면 밥 달라고 야옹거리는 일상적인 모습조차 매번 신기하기만 합니다. 좁디좁은 나의 세상에 찾아온 선물과도 같은 버프와 두부에게 매일 특별하진 못해도 지루하지 않은 오늘을,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하는 매일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버프야, 두부야! 집사가 내일은 빨리 일 마치고 좀 더 일찍 올게! 부족한 우리와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 비록 너희의 시간이 우리보다 조금 더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도 우린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남집사의 기록

  나는 한 분의 ‘여보’님과 두 마리의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남집사다. 다시 말해, 한 여자의 배우자이자 세 생명의 집사이기도 하다. 다들 아시겠지만 세 생명을 동시에 모시는 건 쉽지가 않다. (심지어
한 분은 종족이 다르다) 일의 특성상, 나는 주말에만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이 척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츄르 값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고양이들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찹찹’거리며 밥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주말이 되어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경계하며 냄새를 맡는 버프나, 날 보자마자 내 다리에 자기 몸부터 비비며 영역 표시하는 두부나, 120일은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날 기다리다 반겨주는 여보님을 보면 주말 집사라는 거 정말 할 짓 못 된다 싶을 때가 많다. 

  이런 주말 집사를 미워할 법도 한데, 매번 반겨주니 한편으론 큰 힘을 얻는다.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가족 덕분이었다. 그래서 늘 나는 일을 하면서도 가족이 반겨줄 주말을 기다리고, 생각하며 또 그리워한다. 어쩌면 우리 집의 집사는 내가 아니라, 여보님과 두 냥이가 아닐까. 주말마다 집으로 오는 남집사를 보살펴주고, 오구 오구 해주는 나의 집사님들은 항상 내 편에서 내 마음을 지켜주는 존재들이다. 고마워요, 덕분에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어요.

글.사진 최인애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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