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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두 눈에 비친 우주

  • 승인 2021-05-28 10: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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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이었어요. 학교 주차장 공사판 한가운데에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는데, 그냥 못 지나가겠더라구요. 너무 위험하고 더운 여름이었으니까, 잠깐 우리 집에서 쉬게 해줘야겠다 하고 다가갔죠. 눈처럼 흰 모색, 보석 같은 오드아이를 보고, 잠깐 길을 잃은 고양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에 글도 여러 번 올렸고, 주변에 소문도 낸 만큼 금방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마루는 저와 함께할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스며들다

  그렇게 임시 보호를 시작했다.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처음엔 녀석을 그냥 ‘아가’라고 불렀다. 하지만 임시 집사는 결국 아가의 엄청난 애교와 수다에 정이 들어버렸다. 작은 자취방에서 혼자 생활을 하던 집사. 아무도 듣는 이 없던 집사의 혼잣말에 야옹, 냥냥거리며 일일이 대꾸를 하는 아가. 하얗고 작은 아가의 존재감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게다가 임시 집사의 성향과 동일하게 아가 역시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개냥이였다. 집사의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배 위에 올라가서 고로롱고로롱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경청하고, 온몸을 부비며 반가워했던 아가는 결국 ‘마루’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그렇게 임시 집사 또한 정식 집사로 승격하게 됐다. 

개냥이 of 개냥이

  집사의 가족들은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고양이는 요물이다’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한동안 집사는 마루의 존재를 비밀로 해야만 했다. 그러다 연휴에 무턱대고 마루와 함께 본가에 찾아갔다. 

  처음 마루를 본 아버지께서는 꼭 다른 주인을 찾아서 보내라고 하셨지만, 본가에 있는 동안 마루가 매일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에 마중을 나가고, 폭풍 애교를 선보인 덕에, 아버지의 마음 역시 금세 활짝 열렸다. 

  딸만 둘이었던 집이었던 집사의 부모님에게 마루는 소중한 아들이 되었다. 지금도 집사의 아버지는 마루를 부를 때면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아들~” 하고 부르신다. 큰 키만큼 항상 든든하고 굳은 소나무처럼 느껴졌던 아버지지만, 마루에게만큼은 한없이 부드럽고 따스한 사람이 되신다고.

  또 본가에 있는 비숑, 자몽이에게도 마루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잠도 함께 자고 간식도 나눠 먹는 친구. 자몽이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체구의 마루지만, 함께하는 데 겉모습은 아무런 장벽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아는 비밀을 말하자면, 자몽이가 일방적으로 짝사랑을 품고 있다는 거? (웃음)

그래도 고양이

  넘치는 친화력으로 때로는 ‘고양이가 아닌가?’ 싶은 마루가 ‘그래도 고양이가 맞긴 하네’ 싶을 때는 바로 새로운 박스를 만났을 때다. 비싼 숨숨집을 사줘도, 숨숨집이 담겨온 박스 안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 마루를 볼 때면 허탈하기까지 하다는 집사. 이사를 할 때도 마루가 자꾸만 이사 박스에 몰래 들어가는 바람에 눈에 불을 켜고 마루를 감시했다.

  또 마루는 보통의 고양이답게 시끄러운 것도 싫어한다. 청소기랑 헤어드라이어가 등장하면 어디에 숨었는지 그 빛나는 눈동자도, 조금은 짧아서 더 귀여운 꼬리도, 달콤한 향기가 폴폴 날 것 같은 핑크 젤리도 보이지 않는다. 감쪽같이 꼭꼭 숨은 마루는 청소가 끝나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래서 목욕보다 목욕 후에 드라이기로 털 말리는 일이 더 힘들다고 집사는 말했다.

집사에게 마루란

  사실 임시보호를 하던 중, 마루가 갑자기 토하고 기운을 잃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범백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접종하지 않은 어린 고양이가 범백에 걸리면 치사율이 매우 높은 만큼, 병원에 있는 동안 마루도 울음소리도 내기 버거워할 만큼 많이 아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집사는 ‘네가 다 나아서 건강해지면, 평생을 함께할게’라는 약속을 마루에게 했고, 입원 5일째부터 마루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고, 책상 위 물건들을 죄다 떨어뜨리고 다니면서도 저는 절대 다치지 않는 ‘냥아치 마루’가 되었다고. 그래도 요즘은 집사가 ‘안돼!’라고 하면 알아듣고 자제도 할 줄 아는 어른 고양이가 되었다.

여름 햇살 아래 둘

  집사는 마루 덕에 뜨거운 여름 햇살까지도 좋아하게 됐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두 눈동자도, 솔솔 바람에 흩날리는 뽀얀 털도, 포근하고 따스한 마루의 향기까지도 더운 여름을 사랑하게 해준다고. 

  마루의 두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곧 마루의 온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는 집사. 마루가 없던 시간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집사. 마루와 집사가 언제나 서로에게 따뜻한 여름 햇살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글.사진 성예빈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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