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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안녕, 나의 20대 그리고 고양이 왕국

  • 승인 2021-06-03 10: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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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have I become, my sweetest friend?
내 가장 소중한 친구여, 난 대체 무엇이 되어버린 걸까?

Everyone I know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Goes away in the end
결국에는 떠나 버리곤 해

And you could have it all
그리고 네가 모든 걸 취할 수 있단다

My empire of dirt
흙이 된 나의 제국까지도

- Johnny Cash, 「Hurt」

  빠르게 흘러간 2020년. 다시 가을은 돌아왔고, 저의 20대도 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20대를 함께한 소중한 고양이 왕국도 황혼을 향해 기울고 있습니다. 20대의 청춘을 함께했으며 내 추억의 밑거름이 된 소중한 친구들, 항상 건강하게 아픈 곳 없이, 별 탈 없이 평생을 함께할 것만 같았던 고양이들의 제국. 사람인 저와 친구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당연한 사실이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아프게 느껴질까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집보다 학교가 좋았던 스무 살의 나. 그때 제 곁에는 엄마 젖을 먹던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어 취업 걱정을 하던 때, 젖 먹던 새끼 고양이들은 다른 고양이의 어미가 되었고, 좀 더 큰 미래를 걱정하는 지금, 20대의 끝자락에서 이제 그 고양이는 차가운 땅속에 묻혔습니다. 저도 그렇게 20대를 함께한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을 마음 한쪽에 묻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 했지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 속에

아주 키 작은 그 마음으로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했던 곳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소중한 내 친구여

- 신성우, 「서시」

  휴일 이른 아침, 밥을 달라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언제나 마냥 반가웠던 건 아닙니다. 한 번쯤은 늦
잠을 자고 싶기도 했고,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기도 했습니다. 친구와 다투거나 이별의 아픔을 느꼈
을 때 고양이들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항상 그랬던 건 아닙니다. 

  가끔은 혼자 조용히 슬픔을 곱씹고 싶을 때도 있었고, 그 누구의 위로도 받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맘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저리 가’라며 짜증도 내고 일부러 피하기도 했으며 집에 없는 척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제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제가 슬플 때도 힘들 때도 그리고 즐거울 때도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 주던 아이들을 어쩌면 저는 당연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고 난 지금, 비로소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너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지만
약속해 어느 날 너 눈 감을 때 네 곁에 있을게 지금처럼

그래 난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 가을방학, 「언젠가 너로 인해」

  수컷 고양이 꼬리곰탕, 줄여서 곰탕이라는 이름은 몽땅한 꼬리가 인상적이어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곰탕이와 애들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도가니 역시 아빠를 닮아 짧은 꼬리가 특징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짧은 꼬리를 부르르 떨던 아이, 에메랄드색의 눈동자가 참 매력적이던 아이, 수년간 몸이 아파 폭풍우 속 등불처럼 위태로웠지만, 꺼질 듯 말 듯 하면서 더 타오르던 아이.

  내 20대를 함께한 도가니는, 마른 몸을 이끌며 도로를 건너다 자동차에 치인 도가니는 2020년 7월, 10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는 노란 고양이를 보았을 때 저는 그 아이가 도가니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병마와 싸워 견디던 강한 아이였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언젠가 도가니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를 마치진 못했던가 봅니다. 우리에게 놓인 시간은 어째서 이렇게 짧고 또 소중한 걸까요. 좀 더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부디 도가니가 다음 생에는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사진 안진환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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