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C. THE BIGGEST PRESENT

  • 승인 2021-06-07 10: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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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운 오후. 내 무릎 위에 앉아 골골송을 부르는 폼폼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던 중, 새삼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우리는 이렇게 가까워져,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된 걸까?

서두르지 않아

  우리의 사이가 처음부터 가까웠던 것은 아니다. 첫 만남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이 상황은 감개무량할 정도로 커다란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노아와 폼폼을 스위스에서 만났다. 노아는 처음부터 우리를 좋아했고 호기심도 참 많았다. 새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동장에서 나와 집안 여기저기를 탐색했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내게 다가와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애교를 부리는 새끼 고양이 노아는 정말 작고 귀여웠다. 

  반면 한 배에서 태어난 폼폼은 예민하고 겁이 많았다. 낯선 집에 도착했다는 두려움에 밥도 먹지 않고 구석에 웅크려 있어서 우리의 애를 태웠다. 다행히 차차 새집에 적응해갔지만, 남편과 나를 오랫동안 경계하며 마음을 내어 주지 않았고, 툭하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기 일쑤였다. 조금 친해진 것 같아 턱 근처를 살살 쓰다듬어 주려고 하면, 얌전히 손길을 즐기다가도 예고 없이 있는 힘껏 ‘냥냥펀치’를 날리며 도망가곤 했다. 

  처음에는 노아와 달리 왜 폼폼은 우리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폼폼의 성격이 본래 그런 것을 어찌하랴. 그저 받아들이고, 폼폼이 원하는 대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기다려주는 수밖에. 

천천히, 살며시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온 지 대략 1년쯤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폼폼이 갑자기 소파 위에 누워 있는 내 곁으로 올라와 골골송을 부르며 배에 꾹꾹이를 해 주었다. 그때의 충격과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도도하고 까칠한 폼폼이 스스로 다가와 꾹꾹이를 해 주다니?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턱 근처를 쓰다듬어 주니 아예 내 배 위에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그날을 시작으로 폼폼과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냥냥펀치를 날리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폼폼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 숨겨왔던 우리를 향한 강력한 신뢰의 감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폼폼, 하고 부르며 손을 내밀면 그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달려와 머리 박치기를 하는, 정말이지 집사의 심장을 마구 폭행하는 귀여운 애교까지 서슴없이 보여준다. 심지어 이제는 무릎에 앉아 골골거리며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기까지 한다. 폼폼은 사실 애교가 아주 많은 성격인 것 같다. 다만, 폼폼은 천천히 신뢰를 쌓아 나갈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르익어가는 관계

  처음 스위스에 왔을 때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시골에 고립된 것만 같았다. 그것이 너무 외로워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 부단히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빠르게 친해진 지인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의 관계는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 역시 부자연스러운 속도는 내달리면 결국 탈이 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반면 폼폼과 나의 관계는 달랐다. 어서 친해지고 싶었지만 굳이 애쓰지 않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폼폼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신뢰를 쌓아갔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외국에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도 참 많다. 특히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인간관계 문제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아이들과 나 사이의 신뢰 관계가 무척 큰 위로가 되어준다. 마음을 모두 내보여 준 고양이는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지는 겪어봐야만 알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느리지만 신중하게 쌓아간 우리의 유대감은 내가 스위스에 와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짙어지고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글.사진 이지혜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9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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