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P. CHEMI-STRY

  • 승인 2021-06-16 10:44:57
  •  
  • 댓글 0




믹스견 클로이의 임보처를 찾아요

  2019년 4월 7일, 내가 유기견 입양 거리제에서 처음으로 클로이를 만난 날이다. 길 위에 버려졌던 많은 아이들이 임시보호자와 함께 울타리 안에서 눈을 빛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때 갈색의 맑은 눈, 머털이처럼 정리되지 않은 털, 걱정 없어 보이는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가 긴 발톱으로 내 다리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넸다. 

  ‘추정 나이 2~3살, 4.2kg, 안락사 직전 구조된 암컷 믹스견, 심장 사상충, 구조된 아이 중에 가장 털 빠짐이 심함, 다른 강아지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 입양제 벽면에 적혀있던 그 아이의 이름은 클로이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밥 먹는 내내, 내 다리를 툭 쳤던 클로이의 갈색 눈망울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잔잔한 행복이 모여

  ‘단기 임보처에 있지만 내일부터는 위탁처로 돌아가게 됩니다.’

  유독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었다. 입양은 고사하고 당장 임시 보호처조차 구해지지 않은 아이였다. 사회성이 떨어지는데 위탁처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잠시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 현미가 떠올랐다. 

  2017년 8월. 우리와 가족이 된 현미는 이미 2번의 파양 경험이 있는 파양견이었다. 전 주인이 3개월 정도 된 현미를 분양받아 키우던 중, 집주인의 반대로 파양하게 되었다고 했다. 강아지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클로이가 현미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선뜻 임시 보호를 결정하기 망설여졌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남편과 며칠간의 고민 끝에 임시 보호 신청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임시 보호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유기견 거리 입양제에 한 달에 한 번은 참석하기. 온라인카페와 SNS에 클로이의 모습, 성향, 근황을 기록하기. 예쁜 모습만 기대하고 유기견을 입양했다가 다시 파양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털 빠짐, 사회성, 심장사상충 등 입양 시 고려해야 하는 부분들을 신청서에 세세하게 적었다. 

 


 

입양하길 참 잘 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언제 남이 될지 모를 기약 없는 네 식구가 되었다. 말 그대로 ‘임시’ 보호자. 임시라는 단어에 이토록 무거운 책임감이 드는 것은 살면서 처음인 것 같았다. 첫날 클로이는 밤새 기침을 했다. 조금만 추워도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하루 대부분을 누워서 보냈다. 코는 바짝 말랐고 숨 쉬는 것을 힘들어해 급한 대로 방 안에 젖은 수건을 옆에 놓아주었다. 

  첫날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했고, 다음날은 가벼운 산책을 했다. 클로이는 산책하는 동안 줄을 당기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오롯이 냄새 맡는 것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굳은살 없이 말랑한 발바닥 패드와 아주 길고 날카로운 발톱을 보니 아마도 오랜 시간 바깥세상에서 자유로이 산책한 적 없어 보였다. 

  위탁처에서 다른 강아지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던 클로이였다. 실제로 산책을 데리고 나가보면 다른 강아지가 다가오는 것을 불편해했고, 현미에게조차 경계심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현미는 물도, 밥도, 간식도, 장난감도 모두 클로이에게 양보해 주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애정 표현을 자제하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짝 말랐던 코는 촉촉하게 윤기가 생겼고, 속살이 다 보일 정도로 듬성듬성했던 털은 어느새 빼곡하게 채워졌고, 뼈가 만져지던 마른 몸엔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걱정했던 심장사상충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한 달, 두 달, 임시 보호 기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클로이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둘 다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클로이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렇게 클로이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현미와 클로이는 서서히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젠 매일같이 레슬링하며 뛰어놀기 바쁘고, 함께 몸을 맞대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일상이다. 가끔은 서로의 행동을 거울처럼 따라 하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했던 나와 남편의 일상이, 클로이로 인해 잔잔한 행복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우리 부부는 매일같이 얘기한다.  

 

우리, 입양하길 참 잘했다. 


글.사진 채혜영
에디터  조문주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10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