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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짧은 다리의 역습

  • 승인 2021-06-21 10: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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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긋 선 귀,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촉촉한 코, 


스피츠답지 않은 치명적인 짧은 다리. 

 

 

그의 이름은 바로 봉구

  봉구라는 이름을 들은 내 친구들은 모두 다 같은 말을 한다. “유명 밥버거 집 이름이야?”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지만 그 말에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동생과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봉구라는 이름은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좀 더 말랑말랑하고 럭셔리(?) 한 이름을 상상했던 나와 동생은 당연히 반대했었다. 하지만 엄마께선 ‘봉구’라고 이름을 짓지 않으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별다른 수가 있겠는가! 울며 겨자 먹기로 녀석을 봉구라고 부를 수밖에.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봉구에겐 봉구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지만 말이다(웃음). 

 

작지만 커다란 너

  다른 이들처럼 나 역시 반려동물을 들이기 전 많은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돌봐주고, 놀아주고, 또 아플 땐 어떻게 할 것인지 나름의 대책을 세웠다. 생각해 보면 봉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몸을 벅벅 긁고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증상은 더욱 심해져 봉구는 매일 밤잠도 못 자고 몸을 긁어댔다. 

  병원에서 곰팡이성 피부염이라는 진단을 들었을 땐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수의사 선생님은 상태가 매우 심각한 상태로, 피부 안쪽에서부터 각질이 심하게 일어나 있으며 조금만 더 방치됐다면 피부가 부패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대체 나는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강아지를 덜컥 데려왔던 걸까,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았으니 치료만 잘하면 금세 좋아질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동안 말도 못 하고 괴로워했을 봉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몸에 약을 바르고 일주일 치 약을 처방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봉구가 또 몸을 긁어 상처가 덧나는 걸 막기 위해 넥카라도 씌웠다. 이 작고 작은 아이가 거의 자기 머리 두 개 만한 넥카라를 쓰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니 또 가슴이 미어져 눈물만 났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내가 책임지기로 한 생명이니 모든 것이 내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가고, 꼬박꼬박 밥도, 약도 먹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또 예뻐해 줬다. 정성이 통한 것일까? 3개월 뒤, 봉구는 씻은 듯이 나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우리집 평화 지킴이 오봉구

  사실 우리 자매의 사이는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가끔 서로에게 쌓인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일 뿐, 평소에는 서먹한 보통 자매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봉구는 연결고리가 되어줬다. 봉구를 핑계로 함께 산책도 나가게 됐고, 일과를 공유하면서 조금씩 깊은 대화도 나누게 됐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때 나는 동생과 꽤나 심각하게 언쟁을 벌이고 있었는데(아마 거의 두 시간도 넘었을 거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질 때쯤, 동시에 우리 자매의 눈에 봉구가 들어왔다. 잔뜩 겁에 질린 채 우리 둘 사이에 엎드려 있는 봉구를 본 순간, 마법처럼 서로를 향한 미운 감정이 착 하고 가라앉았다. ‘너도 감정을 모두 느끼고 있구나, 불안해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 이상 싸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우리 집 평화 지킴이, 봉구 덕분에 집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전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스피츠는 폐쇄적 사회성이 강한 견종이라 꾸준한 사회성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 훈련사의 말을 듣고 애견카페에 봉구를 데리고 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봉구는 기가 죽어 숨어다니기 바빴고 친구들이 놀자고 오면 끊임없이 짖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억지로 사회성 훈련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보면 봉구가 입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주 산책을 해 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이 봉구에게도 더 좋을 것이었다. 3년간의 1일 1산책이 도움이 된 걸까? 이제 봉구는 산책길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 엉덩이 냄새도 곧잘 맡는다(정작 자기 냄새는 못 맡게 하지만 말이다).

  최근 동생이 열심히 돈을 모아 차를 샀다. 봉구를 태우고 처음으로 넓은 공원에 가 봤는데, 신나서 방방 뛰는 봉구의 모습에 또 마음이 시큰해졌다. 매 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아직 못 해준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짧은 다리를 포개고 내 옆에 누운 봉구를 향해 속삭여본다. 부족한 보호자라서 미안하다고, 함께 바다도 보러 가고, 애견 펜션도 놀러 가고, 그렇게 못 해본 것들을 하나하나 경험해보자고,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글. 사진 오지원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0년 10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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