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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성년으로 향하는 힘겨운 싸움

  • 승인 2021-07-06 08: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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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릴케와 함께하는 시간은 번개처럼 지나가 버린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그동안 한국 방문을 미루어왔지만, 8월 중순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일이 생겼다. 릴케와 떨어져 지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벌써 무거워진다. 가족의 한 구성원이 잠시나마 자리를 비우는 것이 혹시라도 릴케에게 정서적 불안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릴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남은 시간을 릴케와 함께 더욱더 알차게 보내 야만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남편은 보통 일주일에 두 번 릴케를 데리고 출근을 하는데, 그 횟수를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였고 필자는 오후 릴케와의 산책 시간을 훨씬 더 늘리기로 했다. 이웃집의 골든 리트리버 친구 ‘자리’와의 산책 시간도 덕분에 늘어나 릴케에게는 마냥 기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무산된 박람회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반려견 박람회가 열려 우리 부부는 한참 챔피언십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독일에서는 축구 경기를 비롯한 모든 박람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릴케의 챔피언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언젠가 릴케가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릴케는 독일의 쿠이커혼제 협회로부터 세 차례의 철저한 심사를 거쳐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기쁘게도 지난해 릴케는 최연소 챔피언십을 받았지만, 앞으로 두 번의 심사가 더 남아있다. 그런데 박람회가 계속 취소가 되는 바람에 릴케가 아빠가 될 수 있는 시기는 점점 미루어지고 있다. 릴케는 이러한 우리 부부의 계획을 알고 있을까? 

 


 

중성화 수술, 불편한 진실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수캐를 아무런 이유 없이 중성화시키지 않는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릴케가 참을 수 없는 자신의 본능과 싸우는 모습을 보는 일은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내 주변의 소수의 사람은 이러한 이유로 몹시 어렵게 중성화 수술이라는 선택도 하기도 한다. 릴케와의 즐거운 산책 중에도 힘겨운 시간이 있는 데, 바로 발정기의 암캐가 지나갈 때, 혹은 중성화된 수캐가 지나갈 때 본능과 싸우는 릴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다. 중성화된 수캐에게는 뭔가 특별한 냄새가 있는 모양이다.
 
  반려견의 중성화 수술은 여러가지 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견주의 입장에서라면 사실 중성화 수술이 어느 면 에서는 다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려견 입장에서는 질병 예방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장점도 있을 수 있지만 동물의 자유를 크게 제한한다는 점에서 사실 행복한 해결책만은 아닌 것 같다. ‘반려’라는 말이 시사하듯 반려견과 견주와의 관계, 삶의 방식 등을 충분히 검토해 본 후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처음으로 개에게 물리다

  다행히 릴케는 지금까지 다른 개에게 물리거나 상처를 입는 불행한 일을 당한 적은 없었다. 릴케와 함께 산책하다 보면 목줄을 풀고 놀지 못하는 개들도 더러 있는데 그때마다 견주는 “우리 개가 다른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숲에서 우리 부부는 보통 목줄을 풀고 릴케가 마음껏 뛰놀게 해주곤 하는데, 마주 오는 방향에서 목줄을 한 개가 다가올 경우 빨리 릴케의 목줄을 채운다. 반면 상대편 반려견이 목줄을 풀고 있을 때는 그대로 놔두기도 한다.

  어느 주말, 평소 릴케와 자주 산책하던 숲이었다. 약 오십 미터 거리에서 몇 마리의 개들이 놀고 있었고 릴케는 잽싸게 그쪽으로 달려갔다. 아뿔싸, 릴케보다 두 배는 더 큰 대형견 세 마리가 릴케를 바닥에 눕혔고 릴케는 소리를 질렀다. 처음으로 릴케의 신음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철렁했다. 간신히 도망친 릴케가 우리 부부에게로 쏜 살같이 달려왔다. 자세히 보니 한쪽 발을 절뚝이고 있었고, 왼쪽 발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처음으로 다른 개에 게 물린 경험을 한 릴케는 그날 산책 내내 다른 개가 지나가도 달려가지도 않았고 내내 우리 곁에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다른 개에게 물린 이 경험이 릴케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사진 이영남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0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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