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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원해요

  • 승인 2021-07-06 08: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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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삶의 양식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가 처음 퍼졌을 당시, 인터넷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한산해진 자연을 동물들이 맘껏 누비는 장면이 담겨있었는데, 힘든 와중에 그나마 다행이라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경우는 좀 다르다. 주로 자신의 보호자와 같이 불편을 겪는 쪽에 서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가 크리스에게 미치는 영향

 

  처음 바이러스가 퍼지고 나는 3개월간 두문불출했다. 내 ‘껌딱지’인 크리스도 당연히 거의 집 안에만 머물렀다. 가끔 집 근처나 아파트 앞 화단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게 전부였다. 크리스가 활동량이 많지 않은 개라는 사실 이 이때만큼 다행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코로나가 조금은 잠잠해지고 하나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생기던 무렵, 우리 가족은 캠핑 장비를 샀다. 사실 크리스는 차를 타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도로에 유기됐던 기억 때문은 아닐까 짐작한다. 입양 직후 차를 타고 데리고 올 때도 격렬하게 짖고 불안해했으며, 이후 시도했던 근교 나들이조차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이동 시간을 늘려가며 노력하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이번 캠핑이 바로 그 기회라고 생각했다. 크리스를 위한 짐과 걱정을 한 아름 챙긴 채 차에 올랐다. 그런데 크리스 는 뜻밖에 담담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놀러 가는 것임을 크리스도 느낀 걸까? 가끔씩 개들이 사람 말은 못 해도 ‘리스닝’만큼은 분명히 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곤 한다.

  어쨌거나 그렇게 무사히 도착한 캠핑장에서 크리스는 함께 잠도 자고 바닷가 산책도 하고 불멍(장작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혹시라도 밤에 짖으면 어떡하나 했던 걱정이 무 색하게, 크리스는 이틀간 우리보다 더 꿀잠을 잤다.
개들은 왜 엄마를 제일 좋아할까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는 우리와 더 자주 붙어있을 수 있게 되었고, 어쩌면 그 덕에 크리스도 사진 속 야생동물들만 큼은 아니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크리스는 나와 함께 있는 걸 그 무엇보다 가장 좋아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우리 집에서 나를 제일 좋아한다.

  어째서일까? 예전에 ‘개들은 왜 대부분 엄마를 제일 좋아할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크리스를 입양한 후 다른 강아지 육아 일기를 많이 염탐하면서, ‘우리 개는 엄마를 제일 좋아한다’라는 식의 글을 자주 봤었다. 아마도 대부분 가정에서 엄마가 제일 오랜 시간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코로나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도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얻을 수 있었던 작가로서의 많은 기회가 사라졌다. 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 편안해 보이는 크리스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 힘든 시기 내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하는 크리스로 인해, 나 역시 위로받는다.

크리스와 함께라면

 

  크리스가 내게 바라는 것 중에(물론 기본적인 의식주를 챙겨주는 데 필요한 수입이 있다는 전제하에) 경제적 성공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하나도 없다. 크리스가 내게 원하는 건 깊은 포옹, 함께하는 시간, 따뜻한 눈빛, 같은 곳을 보며 걷는 산책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자랑스러운 직함과 능력이 없어도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는 하다못해 내 이름조차 필요하지 않다. 있는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것. 그건 내 오랜 로망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준 적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알기에 많은 이들은 오늘도 운명적 사랑을 꿈꾸고 예술가들은 수많은 명곡과 영화, 소설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빌리 조엘의 이라는 노래도 이 같은 인간 의 ‘불가능한 로망’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불가능이라 여겼던 이 로망은, 크리스와 함께라면 현실이 된다.
I don’t want clever conversation
나는 똑똑한 대화를 원하지 않아요

I never want to work that hard
그렇게 어려운 건 필요하지 않아요

I just want someone that I can talk to
난 그저 이야기 나눌 상대가 필요해요

I want you just the way you are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원해요

 

 

글.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0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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