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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LOVELY TRAPS

  • 승인 2021-07-16 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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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높고 짙다. 신선한 아침 공기에 알싸함이 더해졌다. 가을이 온 것이다.

 

부비적 트랩

 

  얇지만 강하게 스며드는 까슬까슬한 햇살. 거실 한가운데로 내려앉은 동그란 햇살 돗자리에 한자리 차지하고 누워 지그시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그림자가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조니와 데비가 보였다. 다소곳하게 앉아 나를 구경하는 두 실루엣. ‘어여쁜 햇살보다 너희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구나.’ 나는 오늘 하루도 또 이 작은 아이들의 귀여운 함정에 빠진 것이다.

 

  조니와 데비는 나와 함께 놀고 싶거나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을 때면 곧바로 ‘부비적 트랩’을 발동한다. 부비적 트랩이 한번 발동하기 시작하면 거실에서 부엌까지 물을 뜨러 가는 그 짧은 거리조차 두세 번은 빙빙 돌아가게 된다.


  부비적 트랩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바로 내 얼굴과 다리, 팔, 집안 가구 등 가릴 것 없이 모두 부비적 부비적 몸을 비비는 것이다. 부비적 트랩은 아주 위험한데, 노트북으로 중요한 작업을 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꼭 무슨 낯선 바이러스라도 생긴 것처럼 알 수 없는 꼬불꼬불한 글자들이 화면 가득 적혀 있을 때가 많다.


  잘 걸어가던 내 걸음걸이도 멈칫멈칫 이상해 지고, 얼굴을 향해 계속 부비적 부비적 하는 바람에 눈조차 제 대로 뜰 수가 없다. 더욱이 무서운 점은 한 번 걸려들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행복하고 귀여운 고문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무시무시한 부비트랩이 아닌, 이 작은 아이들의 부비적 트랩만 가득하다 면 어떨까.

 

눈빛 모스 시그널 

 

  아이들이 지닌 강력한 무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탑재된 두 번째 무기는 바로 ‘눈빛 깜빡깜빡 신호’다. 나는 이것을 ‘눈빛 모스 시그널’이라고 부르는데, 꼭 아이들이 나에게 눈 깜빡임으로 모스 부호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붙인 이름이다. 한 번은 재미 삼아 정말로 해석을 해보았지만, 대부분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기에 피식 웃으며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니와 데비가 눈빛으로 깜빡깜빡 사랑을 말할 때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당장 아이들에게 슝 달려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이 꼬맹이들의 노림수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 정도로 조니와 데비의 눈빛 모스 시그널은 강력하고 또 사랑스럽다. 데비는 눈을 깜빡거리기보다는 게슴츠레 뜨곤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밥 주기 전 “모두들 배고파요?” 하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들리면 멀리서도 달려와 나에게 게슴츠레 눈빛 시그널을 마구마구 보낸다. 반면 조니는 제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눈빛 모스 시그널을 마구마구 쏘아댄다.

  어제도, 오늘도, 살얼음 같은 추위가 가득한 계절이 다가올 때도, 그렇게 언제나 나를 기분 좋은 함정에 빠뜨리고 간지러운 공격을 해오는 조니와 데비가 있어 도담도담 하우스엔 오늘도 사소한 행복이 가득하다.

 

 

글·사진 김보미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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