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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가치투자

  • 승인 2021-07-23 08: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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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 일어나니 어제 다이소에서 산 벽걸이 후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중량이 과했던 탓일까. 머지않은 곳에는 액자 하나가 뒤집어진 채 내팽개쳐져 있다. 접착제 부분을 라이터로 지져서 벽에 붙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스노우 볼을 굴려보자

  하맹이는 눈치도 없이 떨어진 후크를 앞발로 툭툭 치며 드리블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괜히 후크를 집어 거실 저편으로 힘껏 던진다. 털을 흩날리며 뛰어가는 하맹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언제쯤 내 집 벽에 못질을 하는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함이 앞선다. 하맹이가 후크를 잃어버렸는지 날 올려다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나는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는 건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잠시 동안 하맹이와 나는 허망함이 가득한 시선을 교환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주말부터 우울하긴 싫다. 기분전환을 위해 TV를 켰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방영 중이었다. 메리츠 자산운용의 대표이사인 존 리가 나오는 편이었다. 그는 짧게 소개를 마친 후, 주식투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나는 그의 설득력 있는 말에 쉽게 매료되었다.

  문득 영화 「아가씨(2016)」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상심한 나를 위해 나타난 나의 구원자, 나의 스승님, 나의 존 리.” 그의 말대로 ‘주식 가치투자’를 하면 언젠가 서울에 내 집을 장만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부풀어오른다.


스노우볼은 다음 달부터
  가치투자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미래 유망종목으로 방향을 잡고 동업자의 마음가짐으로 투자에 임해야 한다. 며칠간 유튜브를 탐방하며 시사경제 콘텐츠를 탐닉하고 미래의 세상을 상상했다. 그러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자동차 분야, 그중에서도 ‘자율주행’에 관심이 생겼다. 이젠 투자를 할 기업을 선별해야 할 차례. 잡플래닛에 올라온 기업평가까지 읽어보는 집요함으로 마침내 모든 절차를 끝냈다.

  뿌듯한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제야 하맹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휑한 거실 한가운데 엎드려 날 노려보고 있다. 심심한 모양이다. 떨어진 벽걸이 후크라도 보인다면 이리저리 던져줬을 텐데 안타까웠다.

  어쨌든 가치투자만이 해답이다. 핸드폰 금융 어플을 켜니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계좌에 이십만 원 정도의 쌈짓돈이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의 월급통장 계좌였다. 이십만 원, 이 작은 스노우볼을 굴려 커다란 눈덩이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해 옆집이나 윗집에서 조용히 해 달라고 소리칠 때까지 행복한 못질을 할 것이며, 추억이 담긴 액자를 벽에 걸며 환하게 웃을 것이다. 드디어 주식 계좌에 송금을 하려는 찰나, 알림이 뜬다.

‘매진되었던 캣 타워가 입고되었습니다.’
하맹이를 위해 스노우볼은 다음 달부터 굴리기로 한다.


글·사진 양세호
에디터 신동혁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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