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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기꺼이 감당하는 마음

  • 승인 2021-07-23 1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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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 무료했던 집사는 이제 더는 심심하지 않습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변화의 기쁨

  ‘띠띠띠띠-’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현관으로 마중 나와 반겨주는 무무를 보면, 하루의 피로가 깨끗이 씻기는 것 같습니다. 무무가 온 뒤로, 제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전에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드러누워 SNS 구경에 바빴다면 지금은 무무의 화장실 청소와 사료 그릇을 채우고 놀아주기에 여념이 없지요. 그러나 분주하게 바뀐 일상 또한 꽤나 마음에 듭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 약속 잡고 나가기 바빴던 주말은 옛 일이 된 지 오래. 요즘은 하루 종일 무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하루 가 짧게만 느껴집니다. 맛집 투어가 뭐죠? 카페 투어가 대체 뭔가요?

 

독립적인 무무


  ‘랙돌’은 사람에게 안길 때의 모습이 몸의 힘을 빼고 축 늘어진 인형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에요. 하지만 무무는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 손이나 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무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츤데레’. 만져주는 건 좋지만 싫은, 안아주면 축 늘어져 기대기는 하지만 금세 벗어나고 싶어 하는 성격 때문이죠. 사실 어렸을 때 무무는 종종 제 무릎 위에 올라와 앉아 있다가 잠들기도 했는데요. 이젠 몸집이 너무 커져서 불편한지, 아쉽게도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답니다.

 

너로 인한 희로애락 


  무무가 어렸을 때 슬리퍼로 노는 것을 참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러다 그만 소중한 수염을 다 끊어 먹기도 했죠. 처음엔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고민만 했는데,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무무가 글쎄 슬리퍼에 뚫린 빈 공간에 얼굴을 구겨 넣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뒤로 최대한 슬리퍼를 숨겨봤지만 무무는 어떻게든 찾아내고 말았어요. 어느 순간, 무무의 수염은 다 똑똑 끊어져 있었고, 결국 저는 집에 있는 슬리퍼란 슬리퍼는 다 버리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 집에 남은 슬리퍼는 화장실 슬리퍼밖에 없답니다. 얼굴은 너무 예쁜데 수염만 못난이인 무무를 보며, 웃기고 속상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끊어진 수 염이 다시 자라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리더라고요. (웃음)

  무무 때문에 일주일 내내 마음 졸이며 힘들어했던 적도 있었어요. 무무가 낯가림도 없고 남자친구네 집에서도 너무 예뻐하셨던 터라, 저는 종종 무무를 하루씩 맡기고는 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일을 끝내고 무무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죠. 평소와 달리 전화를 계속 안 받길래 집으로 찾아갔더니 무무가 한 시간 전쯤에 면봉을 부러뜨려 놓은 걸 삼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거의 패닉에 빠졌어요.


  곧바로 집 주변 24시 병원이란 병원에 전부 전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에 비슷한 사고들을 검색하며 불안에 떨어야 했죠. 다행히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저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는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자마자 저는 무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어요. 무기력한 무무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던 기 억이나네요. 

 

  엑스레이 결과 선생님은 면봉이 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변으로 나올 수 있으니 5일 정도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소화제를 받아 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살찔까 봐 제한했던 캔과 간식을 있는 대로 먹였고, 매일 무무의 응가를 비닐봉지에 넣고 손으로 헤집었습니다. 그리고 병원 가기 바로 전날 마침내 변으로 나온 면봉을 보며 얼마나 기뻤는지! 말 그대로 똥 들고 온 집안을 뛰어다녔어요. 이때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한 덕분에 지금은 위험한 것들은 다 치우고 항상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답니다.


지금처럼만

  매일매일 보면서도 아직 무무가 제 곁에 와준 것이 실감이 안 나고, 또 매일 감사한 마음이에요.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이젠 모두 추억이 된 지 오래. 그 모든 희로애락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집사의 책임이고 또 사랑의 한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무무는 제 삶에 스며들어, 길을 걷고 장을 보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손에 쥐어져 있는 간식과 장난감들을 보며 ‘가족이 생긴다는 건 이런 느낌인가 보다’ 하며 혼자 웃기도 하지요. 아직 서투르지만, 무무가 제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는 것만이 지금 제 바람이랍니다.

                  

글·사진 황지원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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