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C. 천고묘비의 계절

  • 승인 2021-07-30 08:35:56
  •  
  • 댓글 0

 

가을 연례행사
  틸다는 365일 중 한여름과 한겨울 약 두어 달을 제외하곤 언제나 털갈이를 한다. 특히 한여름과 한겨울의 털 색은 유독 차이가 크게 난다. 보통 한여름에 새까만 옷을 입고, 한겨울엔 연한 카페라테색 옷을 입는다.

  차가운 공기의 냄새가 창문을 타고 들어올 때 쯤, 틸다는 겨울옷을 입기 위해 또다시 무시무시한 털갈이를 시작한다. 언니의 알러지가 유독 심해지고 내가 아침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리는 계절. 바로 가을이다. 틸다의 털갈이는 평생 반복될 것만 같은 우리만의 연례행사다. 

파란 우주 눈동자

  햇빛이 강하게 느껴지고 하늘이 전보다 높고 푸르러지면 틸다의 눈빛 또한 한층 깊어진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연한 하늘빛을 띠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색이 좀 더 짙어진 것이다. 고양이의 눈동자는 나이테 같은 걸까.

  아무튼 나는 종종 그걸 ‘파란 우주 눈동자’라고 표현하는데, 어떻게 보면 우주 같기도 하고 잔잔하고 넓은 호수 같기도 해서 붙인 이름이다. 틸다의 눈동자는 동공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때마다 형태를 달리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혈관과 신경들의 꾸물꾸물 미세한 움직임이 보이는데 마치 우주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틸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고양이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만큼,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은 높고 고양이는 살찐다
  어째서일까? 가을이 오면 틸다의 식욕도 함께 늘어난다. 그래, 말도 살이 찌는 계절이라는데 고양이라고 살 안 찌란 법 있나. 다이어터 고양이들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하하.

  사실, 틸다는 최근 재발한 면역 질환 때문에 일시적으로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몸 무게와의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던 중, 드디어 식욕이 잦아드나 했는데 이번엔 또 가을이 온 것 이다. 덕분에 운동량을 이전보다 많이 늘리기로 한 틸다. 그래도 확실히 놀이 시간이 늘어나니, 잠도 푹 잘 자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아 보인다.

  우다다 한바탕 달리고 나면 개운해 하는 것 같달까? 나의 올해 목표는 틸다에게 사냥 놀이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아니 중독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냥이 끝난 후엔 꼭 간식으로 보상을 해주며 먹는 즐거움과 놀이의 즐거움을 함께 가르쳐 주고 있다. 다행히 틸다의 몸매가 점점 날렵해지고 있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요즘이다. 신상 감별사

  틸다는 변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경계한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려나?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장난감. 희한하게 장난감은 똑같은 것도 포장지에 싸여있는 걸 더 좋아한다.

  한 번은 헌 장난 감을 새것처럼 포장해서 까준 적도 있었는데, 어찌나 뛸 듯 이 기뻐하던지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고양이란 보면 볼수록 참 단순하고도 귀여운 생명체다. 최근 나는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통해 틸다의 취향을 알아가는 중인데, 그래서 요즘 내 별명은 틸. 잘. 알.이 되었다. 일명 ‘틸다 잘 알아’. 

빈곤 속의 풍요 

  어느덧 팬데믹 시대에 접어든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당연했던 것들이 점점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변할 때, 처음에는 나 역시 많이 두렵고 억울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스트레스마저도 익숙해졌다. 앞으로 나아 가는 것만이 정답인 줄 알았던 시대에 살다가 버티고 버티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자니 우울감이 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게 있다. 바로 내 곁에 언제나 틸다가 있다는 것. 따뜻하고 포근한 고양이. 눈을 마주치면 골골골 노래를 불러주는 고양이. 별것 아닌 장난감에도 폴짝폴짝 뛰면서 재미있어 하는 고양이.

  ‘이 시국에 너마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라는 말을 자주 꺼내게 된다. 그렇게 ‘풍요 속의 빈곤’에서 벗어나 ‘빈곤 속의 풍요’를 찾으려 노력하는 요즘이다. 견디기보단 즐기는 것. 아마도 모든 것이 달라질 내년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 송지영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