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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기억 속 희미한 방울 소리처럼

  • 승인 2021-08-17 08: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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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을은 열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은 어르신들이죠. 이 아늑한 마을에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가구는 우리 집을 포함해 딱 세 가구뿐인데, 오늘은 그중 한 가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름이 많은 고양이

  수십 년간 알고 지냈지만 아직 성함조차 모르는 건, 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식구처럼 더 친숙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할머니 한 분, 할아버지 한 분이 동네에 이사를 오셨습니다. 당시 누군가가 이사를 오는 현장을 처음 목격한 저는 이삿짐 사이에서 낑낑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두 분을 ‘개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셨는데, 녀석은 아마 세상에서 이름이 가장 많은 고양이 중 하나였을 겁니다. 할머니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방울이, 야옹이, 가끔은 이놈, 하고 녀석을 부르시곤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해 주겠지

  많은 이름만큼 특별했던, 그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할머니는 적적하셨나 봅니다. 몇 해 전부터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한 마리를 다시 키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이름이 없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할머니는 녀석에게 딸랑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딸랑이와 함께 수년을 지낸 할머니는 어느덧 80세를 넘기셨고 지금은 왜소해진 체구만큼 생각도 마음도 어린아이처럼 변하셨지요.“딸랑이 주인이 누구예요?” 저와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는 재차 묻습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딸랑이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매번 마음을 빼앗기시는 게 아닌지.

  “할머니가 키우시는 고양이가 딸랑이예요” 하고 알려드리면 잠시 기억이 나신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 음 날 여전히 딸랑이의 주인을 찾으시는 할머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건, 할머니가 딸랑이를 못 알아보더라도 딸랑이는 늘 할머니 곁으로 쪼르르 달려와 볼을 비벼댄다는 겁니다.

  그런 딸랑이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내가 세상을 잊어가도 아이들만은 날 기억해 주겠지,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낡은 기억을 다시금 색칠하는 게 전부인데 말이지요.

 

작가로서 

  2020년의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조용할 날이 없었던 한 해도 이렇게 끝나가네요.

  2년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매거진 C를 작업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작가의 관점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사료를 먹는 모습, 물을 마시는 모습, 영역 다툼을 하는 모습, 어디선가 나타난 새끼 고양이가 밥을 먹는 모습 등 흔하고 사소하지만, 그 작은 이야기들이 뭉쳐 큰 이야기보따리가 되도록 꾸준히 관찰하고 지켜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독자로서
  어쩌면 저는 고양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 명의 독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이름 모를 고양이들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제 나름대로 느낀 고양이들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옮겨 독자분께 전하는 것이지요.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잡지에 이야기를 보내주시는 많은 작가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길고양이, 시골 돌담을 거니는 시골 고양이, 가정에서 집사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집고양이.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고양이들의 삶을 읽는 독자가 되고, 그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어 마침내 매거진을 읽는 독자분께 가닿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어쩌면 영영 몰랐을 한 고양이의 삶을 이렇게 종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 새삼 참 행복하고 또 고마운 일입니다.

 

글·사진 안진환
에디터 신동혁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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