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C. HEARTWARMING

  • 승인 2021-08-17 09: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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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고 일어난 직후의 그루밍은 ‘잘잤다옹~’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의 그루밍은 ‘뽀송뽀송해져라옹~’
  맛있는 간식을 먹고 난 후에는 ‘맛있게 잘 먹었다옹~’
  그리고 남 집사가 막 쓰다듬은 곳을 향한 재빠른 그루밍은
  ‘내 스타일 망쳤다옹! 다시 다듬어야 한다옹!’ 

 

그루밍의 소중함
  나는 그루밍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머나 먼 고양이 별로 떠난 나의 작은 천사 모찌. 모찌는 아프기 시작 한 날부터는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루밍을 한 적이 없다. 아픈 와중에 몸을 단장하는 것 자체가 무척 힘에 부쳤는지, 나의 작은 천사의 윤기 흐르던 털은 날이 갈수록 푸석해지며 뭉쳐갔다.

  깔끔쟁이였던 모찌가 분비물과 함께 잔뜩 엉켜버린 자신의 털을 보며 얼마나 속상해할까 하는 마음에 물티슈로 닦아주고 빗으로 빗겨주었지만, 모찌의 꼼꼼한 그루밍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처음엔 모찌가 스스로 그루밍만 시작한다면,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루밍하는 모찌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엄마, 우리가 있다옹

  모찌의 죽음은 나를 아주 오랜 시간 슬픔에 잠겨 있게 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정지된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살았던 것 같다.

  멍하니 누워만 지내던 그때, 내 곁으로 와서 까칠까칠한 혓바닥으로 정성껏 그루밍해주던 나의 다른 고양이들. 그때의 그 까칠하던 감촉은 나에게 호흡이자, 오늘 하루의 안녕이자, 희망이며 위로였다. 아마 그때 그루밍의 의미는 ‘엄마 힘내. 우리가 있다옹!’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따뜻한 창가 아래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그루밍을 하고 있는 나의 고양이들을 보며 안도와 행복을 느낀다. 

 

길에서 만난 묘연 뚠뚠이

  재작년쯤이었나, 퇴근길에 우연히 한 아파트 단지 안 정자에 들렀다. 그곳에서 나는 나무 팻말 하나를 발견했다. 그 팻말에는 ‘뚠뚠이네’라고 써 있었고, 귀여운 고양이 그림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팻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치즈 태비의 뚱뚱한, 아니 ‘뚱뚱’까지는 아닌 ‘뚠뚠’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가방 속 사료를 뚠뚠이에게 주니 뚠뚠이는 내 두 번째 손가락에 코 인사를 해줬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매일 퇴근길에 뚠뚠이를 찾아갔고 뚠뚠이는 기꺼이 내게 아는 척을 해 줬다. 그렇게 우리는 꽃이 피는 봄부터 무더운 여름, 단풍이 물드는 가을,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을 모두 함께했다.

  그러다 나의 임신, 출산 휴직으로 인해 뚠뚠이와 오랜 시간 만날 수 없게 됐다. 뚠뚠이가 출몰(?) 하던 정자는 우리 동네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던 터라, 갓난아기와 함께 그곳까지 뚠뚠이를 만나러 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작스럽게 회사에 가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우리가 만나던 시간대에 뚠뚠이가 있던 정자로 달려가 “뚠뚠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상처 하나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뚠뚠이는 내 앞에 나타났다. 날 보며 야옹 야옹 말을 거는 뚠뚠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뚠뚠이를 잊지 않았듯이 나의 길  친구 뚠뚠이도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매일 만날 수 있는 날까지, 조금은 위험하고 조금은 냉혹한 길 위에서 뚠뚠이의 삶이 무탈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글·사진 황류리아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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