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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마음을 보듬는 그루밍

  • 승인 2021-08-17 1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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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남편이 일주일간 시댁인 파리로 홀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싶다고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기꺼이 잘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남편이 집에 없다는 뜻은 곧 일주일 동안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노아와 폼폼과 함께 잠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탈
  잠귀가 밝고 예민한 남편은 작은 소리에도 잠을 설치기 때문에 우리는 노아와 폼폼을 입양한 이후로 안방 문을 닫고 자야 했다. 호기심 많은 노아는 초반에는 온종일 열려 있던 안방 문이 밤에는 왜 굳게 닫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 방문을 긁으며 열어달라고 울어대서 내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함께 잠들고 싶은 마음에 여러 번 안방 문을 열고 시도는 해 봤지만, 고양이들의 작은 기척에도 남편은 잠을 설치곤 했다.

  결국 제대로 잠을 못 자 수척해진 남편의 얼굴을 보며 안타깝지만 우리는 방문을 닫기로 결정하였다. 천방지축 캣초딩 시절을 지나니 노아도 곧 적응하여 밤에는 폼폼과 함께 거실에 있는 캣타워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노아가 같이 자고 싶어서 문을 긁고 야옹거리던 모습은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 무조건 방문을 활짝 열고 노아와 함께 잠드는 기쁨을 만끽하곤 한다.

 

밀려드는 외로움 

  스위스에서의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남편이 집을 비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집에 홀로 있는 경우도 많았고, 대학, 직장에 다니면서는 독립도 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것에 원래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달랐다. 친구들도 가족도 없는 스위스에서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남편 한 명뿐이었다.


  스위스에서 맞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남편은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프랑스에 가고, 사정이 있어 일주일가량 혼자 집을 지켰던 적이 있었다. 연휴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텅 빈 집에 홀로 있는 기분은 상당히 외로웠다. 평소에는 쾌적하다고 느꼈던 넓은 집이건만 어쩐지 황량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외국에서 나는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지. 우울한 마음은 끝도 없이 깊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가급적 남편 없이 스위스 집에 혼자 남아있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고양이가 불러주는 자장가

  그때를 생각해보면 요즘 나는 참 많이 달라졌다. 남편의 등을 떠밀어 기꺼이 프랑스로 보낼 줄 알게 되다니, 이렇게나 사람이 바뀔 수가 있나? 이 모든 것은 역시 나의 두 고양이 덕분이리라. 노아와 폼폼이 우리 집에 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집에서 혼자인 것이 두렵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해 주고, 틈틈이 놀아주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들은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와 지켜봐 주고, 때로는 쓰다듬어 달라며 야옹거리며 울었다. 마치 빈 집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밥때가 되면 칼같이 내게 와서 머리 박치기를 하는 폼폼 특유의 애교는 매번 나를 웃음 짓게 했다. 노아는 오랜만에 밤에도 활짝 열려 있는 안방 문을 놓치지 않았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있으면 어느새 노아가 슬쩍 내 이불 위에 올라왔다. 이마와 턱을 살살 긁어주면 노아가 불러주는 골골송을 자장가 삼아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겁이 많은 폼폼은 밤에는 침대 위에 올라와 함께 잠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에는 어김없이 침대 한 편에서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매일 아침 기분 좋게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함께 잠들고 일어나는 일상. 흔치 않은 일이다 보니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쭉, 서로의 곁을 지키며 

  혼자 있는 것이 싫고 외롭다고 느꼈던 나. 하지만 남편의 부재에도 힘들기는커녕 아이들과 즐거웠던 일주일을 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고양이들처럼 나를 직접 핥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노아와 폼폼의 존재 자체가 나의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그루밍해 주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나는 남편이 집을 비운다고 하면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내 곁을 든든히 지켜줄 노아와 폼폼이 있으니까.

글·사진 이지혜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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