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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작고 동그란 기적

  • 승인 2021-09-02 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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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프지만 동구는 우리나라에서 입양 가기 힘든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믹스견에 나이가 있는 편이고, 아픈 곳이 많았으며 공격성도 심한 강아지를 반겨주는 곳은 우리나라엔 잘 없기 때문이다. 

 

운명은 아닐지라도

  동구는 반 누더기 같은 모습으로 길 한복판에서 노끈에 묶인 채 발견됐다. 사람을 무척이나 경계했던 동구는 안락사 전날 극적으로 임시 보호 대상이 되어 보호소를 빠져나왔지만,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안락사 없는 사설 보호소로 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동구는 꽤 오랫동안 경기도에서 경상남도까지 여러 보호소를 전전해야만 했다.

  보호소에서 처음 만난 동구는 안아주면 금방이라도 울 듯한 두 눈으로 조용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너도 많이 힘들구나’. 운명적인 만남보다 연민 가득한 만남이었기 에 입양을 결정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을 경계하고 곁을 내주지 않는, 마음이 닫힌 강아지와 가까워지는 건 쉽지 않기에.

 

동글동글 살아보자

  입양하기로 마음을 정한 뒤, 나는 트라우마 있는 강아지와 친해지는 방법을 공부하고 돈을 모았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내가 동구를 데려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양을 준비하면서도 ‘나보다 훨씬 좋은 가족이 나타났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입양자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여름에 처음 만난 우리는 겨울 초입에 다다랐을 무렵 가족이 되었다. 5월에 구조돼 ‘오군이’로 불렸던 아이에게 나는 ‘동그랗게 살아보자’라는 뜻을 담아 새이름도 지어주었다. 바로 ‘동구’였다.

 

“너 어디 한 번 해보자. 이래도 넘어오지 않을 거야?” 


오기로 만든 온기

  물론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마음을 여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기견이라는 편견, 공격성이 있는 강아지는 가정집에서 사랑받으며 지낼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라도 나는 동구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내겐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도 동구의 마음을 열고 말겠다는 오기가 더 커졌다.

 

  목줄을 하고 산책하는 것도, 처음 보는 강아지와 인사하는 것도,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모두 동구에게는 처음이었다. 나는 평소엔 사랑으로, 하지만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동구에게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6개월 뒤, 다행히 그런 내 훈련 방식이 꽤나 먹혔던 건지 동구는 서서히 마음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일곱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오랜 시간 사람을 거부했던 아이에게 일어난 기적같은 변화였다.

 

네가 누려야 할 세상

  사실 전부터 동구와 함께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여태까지 짧은 목줄로 반경 몇 미터, 혹은 보호소의 작은 방이 세상 전부였을 테니까. 다행히 동구가 대중교통이나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덕분에 우리는 자주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어쩔 줄 모르는 동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항상 동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너를 아프게 했던 것들은 세상의 수많은 일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였을 뿐이라고. 바다와 산 그리고 처음 와보는 도시의 냄새, 그 모든 게 처음이었을 네게 앞으로도 더 많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선물해주겠다고.


편견없이 사랑해주세요

  나는 훈련사도, 수의사도 아니다. 동구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육으로 점차 믿음을 주었다. 동구가 어떤 상황, 몸짓, 어조를 싫어하는지 관찰하고 내 행동을 돌아보며 동구가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인식하게끔 하면서 말이다. ‘유기견’. 이 세 글자로 판단해서 섣불리 입양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강아지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버리고 학대한 사람의 잘못이지, 버림받은 아이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네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세월의 흔적이 때때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우리, 좋은 추억도 참 많이 쌓았지?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최선을 다해 사랑해 줄게. 지금처럼만 예쁘게, 가끔 아픈 티도 내고 말썽도 부리면서 동구답게 누나랑 잘 살아 보자.

글·사진 박주연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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