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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I'll Cherish You

  • 승인 2021-09-02 18: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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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모르던 20살, 자취를 시작하고 며칠 뒤 나는 까만 비닐봉지와 작은 에코백, 달랑 두 가지만 챙겨 무턱대고 대구로 향했다. 그토록 오래 바라고 바랐던 유기견을 입양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예뻐서

 우리의 첫 만남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아이를 처음 마주한 나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아이의 몸집이 내 예상보다 조금(?)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황도 잠시, 나는 이내 그 아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엔 부모님의 반대로 키우지 못했는데, 드디어 내가 족이 된다니!’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콩깍지라도 씐 것처럼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짱이와 나는 가족이 되었다. 만약 그날 내가 단지 덩치가 조금 크다는 이유로 얼짱이를 포기했다면, 난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얼짱이와 가족이 된 지 4년째 되던 날, 나는 SNS를 하던 중 한 유기견이 보호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얼짱이와 닮은 외모 때문에 눈길이 많이 갔던 아이, 바로 도담이였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도담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실제로 만난 도담이의 몸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고 앙상했다.


  우리 집에 온 지 고작 일주일 만에 도담이는 네 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당분간 도담이와 강아지들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야 했다. 당시 나는 새끼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게 삶의 낙이었을 정도로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얼짱이는 그 상황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원래 무심한 줄로만 알았던 얼짱이가 어느 순간부터 강아지들에게 으르렁 거리며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슨 영문인지 얼짱이가 어제까지는 쳐다보지도 않던 새끼들의 투정을 다 받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3일 뒤에는 얼짱이와 도담이가 늘 서로 붙어있는 등, 나도 모르는 사이 둘은 애틋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아이들인데 말이다. 흐뭇함과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울컥 밀려왔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는 듯하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나는 운명처럼 도담이의 새끼와 꼭 닮은 막내 ‘초비’를 만났고 가족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한 가족이 된 건 모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단지 얼짱이를 만났을 뿐인데 나는 첫 째와 닮은 도담이를 만났고, 또 그 인연이 이어져 초비까지 만났으니 말이다. 셋 중에서도 유독 얼짱이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채울 수 없는 빈자리

  어느덧 얼짱이가 내 곁을 떠난 지도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얼짱이를 떠나보낸 그 시간에 머무르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물론 지금 내 곁에는 도담이와 초비가 남아 있지만, 앞으로도 얼짱이의 빈자리는 그 어떤 것도 채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개인 시간도 없이 오로지 내 삶을 강아지에게 맞추며 살아간다는 이유로 날 불쌍히 여기곤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지인에게 이런 위로도 들었다. ‘행복하려고 강아지를 키우면서 왜 우울해하느냐, 먼저 떠난 건 어쩔 수 없다’. 아마 내게 동정을 건넨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매 순간 아이들과 함께할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또 그런 존재가 사라지면 얼마나 큰 공허함을 느끼는지를.

 

추억이 된 우리의 약속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서 다정히 눈을 맞춰주고, 발걸음을 맞추며 산책한 뒤 집에 와서 지쳐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나도 그 옆에서 스르르 잠들었던 일상. 얼짱이가 떠난 뒤 나는 함께했던 그 모든 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매일 깨닫는 중이다.


  짱아, 엄마는 짱이 없이 살아가는 이 시간이 여전히 너무 힘들어. 우리가 한 약속들 그리고 짱이가 엄마한테 남겨놓고 간 추억들이 너무 많아. 강아지도 환생할 수 있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엄마는 종종 그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엄마는 얼짱이가 엄마 강아지라서 너무 좋았어. 내 보물, 내 전부, 내 첫째, 고마웠어.


글·사진 최서연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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