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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우리가 행복할 권리

  • 승인 2021-09-07 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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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겨울. 평소처럼 아빠 회사에 놀러 갔던 나는 종이 상자 안에서 갈색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강아지는 해맑은 얼굴로 신기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너는 누구길래 여기 있니?’

 

우리도 강아지는 처음이라

  우리는 그렇게 같이 살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나는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강아지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급한 대로 마트에서 사료를 사 왔고, 산책을 시켜야 한대서 나갔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예방접종도 해줘야 한대서 병원에 데려갔다. 뭐 남들도 대충 이렇게 개 키우겠지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아껴주고 사랑을 준 것도 아닌데 초코는 매 순간 빛나는 구슬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름만 불러도 꼬리를 붕붕 돌리고 짧은 다리로 항상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기분이 묘했다.

  ‘얜 뭐야?’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초코에 대한 내 마음도 커졌다. 하지만 개를 잘 모르던 우리 가족. 답답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려견과 함께 사는지 알고 싶어 SNS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이들이 반려견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웠다. 나는 정말 무지한 보호자였구나.

마음을 여니 보이는 것들
  초코를 내 남동생으로 받아들이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초코의 배변과 운동을 위해 하루에 최소 3번 이상은 산책을 나가고 있다. 운동은 헬스장에서만 하느라 자연의 변화에는 둔감한 나였는데, 이른 새벽부터 하루에 몇 번이나 초코와 발맞춰 걷다 보니 사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레 피부로 와닿았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나는 어느 순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또 초코는 내게 책임감을 일깨워 줬다. 책임. 그 단어의 무게는 철없이 자랐던 내게 상상 그 이상으로 무거웠지만, 그것을 견뎌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난 조금 더 강인하고 성숙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개를 키워요?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아니, 진돗개를 실내에서 키워요? 사나울 텐데?”

  1m 목줄에 묶여 산책 한 번 나가지 못하고, 사회화를 경험하지 못한 진돗개는 사나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진돗개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견종이든, 아니 그 누구라도 평생을 한 데 묶여 잔반만 먹으며 ‘집 지킴이’로 살면 다 똑같을 것이다.

  강아지의 성격은 유전적 특성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 그리고 교육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한다. 그래서 견종을 불문하고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반려견을 교육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만 한다. 하지만 현재 진돗개를 포함한 우리나라 토종견이 처해 있는 현실은 이상과는 매우 다르다.

  보호소에는 참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유기되어 들개로 살던 아이, 주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 아이, 혹은 개 농장에서 구조된 아이 등. 새끼 시절 적절한 사회화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태반이다. 때문에 좋은 마음으로 보호소에서 토종견을 입양했다 하더라도, 교육하지 않은 채 무작정 가족으로 들이면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토종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쏟아지는 날카로운 시선들
  사실, 산책할 때마다 들려오는 도를 넘어선 시비조의 말투에 이미 내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이런 개는 보신탕용이라며 지팡이로 초코를 위협하는 할아버지, 얌전히 지나가는데 끈질기게 쫓아오며 입마개를 하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그래서 입마개를 하고 나가면 “이렇게 사나운 애를 왜 데리고 나오냐”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싸우거나 경찰을 부른 것도 수차례다.

  난 늘 내가 초코에게 부족한 보호자라고 느낀다. 그래서 행여나 사람들에게 피해라도 줄까 싶어 전문가에게 산책 훈련도 받았고, 훈련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또 관련 서적과 논문을 읽으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반려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탓에, 나는 늘 산책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다녀야 한다. 언제 시비에 걸릴까 두려움에 떨며 늘 ‘을(乙)’ 의 입장으로 다녀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나와 초코의 ‘행복할 권리’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초코에 대한 사람들의 예쁜 시선도, 관심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자연을 느끼며 행복하게 산책하는 그 시간이 존중받길 바란다.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함부로 혐오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듯, 나와 초코에게도 그래 주길 바랄 뿐이다.

  나도 안다. 누군가는 초코를 무서워할 수 있다는 걸. 그렇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이 지나갈 땐 목줄을 최대한 바짝 잡고, 초코를 몸으로 가려주고, 좁은 길에서는 구석으로 다닐 테니, 다른 이들도 우리의 입장을 조금씩만 이해해 주면 좋겠다. 비반려인도, 반려인도, 서로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간 우리 토종견들이 차별받지 않는 날도 오지 않을까?

  세상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많은 보호자가 진돗개와 함께 잠자리에 들고, 질 좋은 사료를 먹이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반려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초코에게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 초코와 내가 행복할 권리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배우고, 노력할 것이다.

 

글·사진 송수연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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