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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너는 우리의 비타

  • 승인 2021-09-14 09: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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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임시 보호, 비타를 떠나보내며-

 

  비타를 보내고 왔다. 우리 자매에게는 다섯 번째 임시 보호이자, 가족이 된 건우와 함께한 첫 임시 보호이기도 했다. 1달 반가량을 함께 지냈지만 입양 문의가 없어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점차 ‘좀 더 함께 있을 수 있겠구나’하는 안심으로 바뀔 때쯤, 비타의 해외 입양이 확정되었다. 

 

공항 문턱에서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지만 차마 안고 있던 비타를 켄넬에 넣을 수가 없었다. 켄넬 안으로 들여보내면 따끈따끈한 호떡을 닮은 누렁이 비타를 안아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없을 테니까.

  ‘앞으로 10시간 동안 켄넬에 갇혀있어야 할 텐데, 좀만 이따가 들어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행인에게 한 소리 듣는다. “개 좀 넣으세요.” 날 선 말들이야 평소 산책하다가도 많이 듣지만 오늘은 좀 더 서운하다. 이제 얘 간단 말이에요. 좀만 더 이따가 이별하면 안 될까요. 오늘은 좀 봐주세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강아지를 안거나 케이지에 넣으면 공항에 출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처음 온 공항.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순한 눈을 한 채 언니들을 바라보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네 눈동자는 낯선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쪽을 좇는데, 집에서는 엘리베이터만 소리만 들려도 멍멍 짖던 너이건만 공항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는지 그저 조용하다. 혹시 네가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켄넬 철망 안으로 내민 내 손가락을 앞발로 몇 번 긁을 뿐이다.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비타를 넣은 켄넬의 무게를 잰다. 여행 갈 때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화물을 맡기는 절차와 똑같다. 비타는 서류를 스스로 챙길 수 없으니까 켄넬 바깥쪽에 비타에 대한 서류를 테이프로 단단히 붙인다. 이 아이가 이제 우리를 떠나 먼 여행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이 난다.

  비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처음 임시 보호한 시리 때와 똑같은 생각이 든다. 이 순하고 착한 아이가 혹시 자기가 잘못해서 또 우리에게 버려진다고 생각할까 봐 너무 미안하다. ‘앉아, 기다려, 빵야’따위는 하나도 못 해도 좋으니까, 강아지의 삶에 딱 한 번만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너는 지금 평생 가족을 만나러 가고 있다고. 우리는 네 견생에서 잠깐 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 임시 보호 가족이었다고. 너는 절대 버려진 게 아니라고. 우리는 너를 만난 순간 동안 네 덕에 정말 행복했다고. 고맙다고. 

 

우리가 함께였다는 증거

  해외 입양은 이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영문도 모른 채 화물칸에 실린 비타. 우리가 깔아준 담요 안에서 어제까지는 집에서 신나게 갖고 놀던 주황 돼지와 함께 달라진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며 꼬박 10시간 동안 웅크리고 있을 비타.

  이제는 내가 지켜볼 수 없는 이 아이의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긴 시간을 버틸까. 자동차를 잘 타는 참을성이 많은 아이였으니까 비행기에서도 잘 참겠지. 국내 입양이라면 아무리 멀어도 비타를 새로운 가족의 품에 데려다주며 이별의 순간을 늦출 수 있을 텐데, 입양 가족의 얼굴을 보며 안심을 할 수 있을 텐데.

  한 번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멈출 줄 모른다. 이별하던 날, 나는 검은 바지를 입고 갔었다. 평소 같으면 검은 바지에 비타의 흰 털이 잔뜩 묻은 게 싫었을 텐데, 오히려 그 흔적이 ‘비타가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었구나’라는 분명한 증거처럼 느껴져 새삼 다행이다 싶다.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비타야, 이별의 순간 ‘사랑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주었는데, 그중 단 하나라도 네게 전해졌을까? 네가 지난 두 달간 보여준 모든 몸짓에는 사랑이 온통 가득했는데, 내가 침대에 누우면 내 팔을 조용히 베고 따라 눕던 자그마한 네 머리가, ‘비타~’ 하고 부르면 가동되는 꼬리 헬리콥터가, 내가 손길을 멈추면 계속 만져달라며 나를 긁던 네 앞다리가 모두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의 몸짓이었는데.

  우리가 받은 것에 비해 돌려준 게 없어서 미안해. 이제는 뉴요커가 된 우리의 다섯 번째 가족, 비타야. 언제나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를 밝혀주던 비타민, 비타야. 정말 고마웠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너를 사랑해. 많이 많이. (비타와의 이별 뒷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건우와 아이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최세연
사진 최세연.최세화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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