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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안개 너머 빛을 찾아서

  • 승인 2021-09-16 1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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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테스트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이들은 반드시 2주간 자가격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워낙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페이스타임을 통해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할 때 릴케의 모습을 보며 거의 울 뻔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서로를 그리워하다

  오랜만에 도착한 한국 땅, 인천공항은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로 여느 때보다 무척 한산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릴케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처음이라 릴케에 대한 그리움은 하루하루 더해져만 간다. 어떤 때는 남편보다 릴케가 더 그리울 때가 있을 정도다.

  독일에 있는 남편은 매일 릴케와 함께 출근해서 릴케와 함께 퇴근한다. 남편의 회사 앞마당에는 개들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큰 정원이 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떠난 뒤 릴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찾았는데 그토록 찾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한동안 어리둥절해 했다고 한다. 릴케가 영상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내 목소리, 그리고 작은 핸드폰에 비치는 내 모습을 ‘엄마’라는 존재로 받아들이기란 힘들 것이다. 릴케가 어떤 존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냄새가 그곳에 없으니 말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박람회 

  8월쯤 독일의 코로나 상황은 다소 호전되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정도 역시 약간 완화되었다. 그 덕분에 약식이지만 소규모 반려견 박람회가 10월에 개최된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소규모이면 어떠랴, 우리 부부가 그토록 기다리던 박람회가 열린다니 정말 뛸 듯이 반가웠다. 이전 호에서도 설명했듯, 릴케가 훗날 아빠가 될 수 있 는 자격을 얻으려면 독일의 쿠이커혼제 협회로부터 심사를 거쳐 총 세 번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박람회가 계속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는 박람회를 대비하여 릴케와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필자가 서울에 오면서 부터 그 모든 준비는 남편이 혼자서 맡게 되었다.

  릴케의 체격과 몸무게는 쿠이커혼제 협회가 지정하고 있는 쿠이커혼제 반려견의 이상적인 체격과 몸무게에 딱 맞아떨어진다. 털의 색깔과 모양, 그리고 쿠이커혼제의 가장 큰 외모적 특징 중 하나인 양쪽 귀 아래까지 길게 내려오는 검은색 애교 털까지도 말이다. 다만 하네스를 오래 착용해서 생긴 등 쪽 털의 쏠림 현상과 가슴 부분 털이 살짝 눌린 것을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가능하면 박람회 전까지는 하네스 대신 일반 목줄을 사용하기로 하고, 무엇보다 릴케의 브리더인 마누엘라를 한 번 방문하여 그녀의 의견을 들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릴케, 엄마 제타와 만나다 

  10월로 예정된 반려견 박람회를 앞두고 남편은 릴케를 데리고 네덜란드 국경 부근에 있는 마누엘라의 집으로 가서 박람회와 관련한 조언, 그리고 털 케어까지 받았다. 릴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털을 깎는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아울러 처음으로 아주 잠깐이지만 릴케의 엄마인 제타와 짧은 만남을 가졌다. 남편의 말로는 주어진 시간이 무척이나 짧아 서로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쿠이커혼제 전문 브리더인 마누엘라의 집에는 릴케의 엄마인 제타 외에 또 하나의 암컷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출산해서 안타깝게도 오래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산을 막 마친 암컷에게는 새끼들과 조용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릴케의 엄마인 제타는 두 차례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기에 독일의 동물보호법에 따라 앞으로 임신 및 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보호권을 가지고 있다. 릴케가 정말 자신의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제타와 릴케가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함께 했더라면 분명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빛이 찾아오기를 

  그토록 기다렸던 박람회이건만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10월, 독일의 확진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 원인이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도 컸다. 릴케가 아빠가 될 수 있는 길이 점점 늦춰지고 있으니 우리 부부의 마음도 덩달아 바쁠 뿐이다. 주최 측에서는 박람회 장소를 급하게 다른 도시로 바꾸는 등의 아이디어까지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구 십만 명 기준으로 50명 이상의 확진자가 있는 도시에서는 큰 행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릴케에게 박람회 대신 동물원 구경이라는 선물을 마련했다.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 부부가 그토록 바라는 박람회에 함께 참가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글·사진 이영남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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