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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HAPPY BIRTHDAY, CHRIS

  • 승인 2021-09-17 0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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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생일 축하해. 네가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너를 처음 만난 날 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어. 너는 크리스마스를 4일 앞두고 우리와 만났어. 기억나? 너의 두 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잖아.

 

이름대로 이뤄졌네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 너를 찾기 위해 수십 장의 사진을 보고, 많은 상담을 하고, 자기소개서를 네 장이나 써야 했다니까. 참 많이 설렜어. 기대도 컸고 말이야.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었고, 앞으로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고만 싶었어.


  너를 데리러 가기 전날 밤이 선명히 기억나. 봉사 센터 홈페이지에서 봉사자들이 올린 글을 샅샅이 뒤져봤었지. 너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어. 봉사자들이 찾아가면 안아달라고 달려 나오는 개들과 달리 너는 텐트에만 콕 박혀있다면서, 너를 ‘텐트 사랑 크리스’라고 부르더라고. 그때 생각했었어.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아이겠구나. 그리고 그 짐작은 맞아떨어졌지. 때마침 우리 집도 당시 여섯 살이었던 딸아이를 위해 비슷한 텐트를 하나 준비해놓았던 참이어서,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한답시고 텐트를 펼쳤다가 접었다가 했던 밤 이 아직 생생해.


  처음으로 함께 찍은 첫 가족사진을 받아본 센터의 봉사자분은 “크리스가 가족들과 잘 어울린다”라는 칭찬과 함께 ‘크리스’라는 네 이름의 뜻에 대해 설명해 줬어. 크리스마스 전에는 평생 함께할 가족을 만나서 꼭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라는 뜻이라면서, “이름대로 이루어졌네요” 하고 덧붙이면서 말이야. 

 

너는 내 꿈의 조각

  어느덧 5번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네. 그동안 우리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지. 이제 우리 가족은 외출 후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반가워하며 달려드는 너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어. 가끔 네가 미용을 하러 병원에 가 있거나 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마저 든다니까. 그리고 생각해. 널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사실 내 어릴 적 꿈은 유기견 보호 센터를 짓는 거였어. 돈을 아주 많이 번 다음 유기견 센터를 지어서 수백 마리의 유기견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책임지는 보호 센터 소장이 되고 싶었지.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더라. 내 한 몸 사람 구실하기도 버거운데 보호 센터라니. 그런 비슷한 꿈도 꿀 수가 없구나 싶었어. 그런데 어린 딸아이를 몇 년째 돌보면서 자신감도 활력도 잃어가던 어느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꼭 100마리, 200마리여야 할까? 한 마리라도 행복하게 해주면, 백 분의 일, 이백 분의 일만큼의 꿈은 나도 이룰 수 있는 게 아닐까?’


  다행히 가족들은 모두 내 계획에 찬성해 줬고, 그렇게 나는 너를 만나 내 꿈의 작은 조각을 이뤘던 거야. 그뿐만이 아냐. 너를 만난 후 나는 작가가 되겠다던 꿈도 이룰 수 있었어. 너를 자랑하고 싶어서 썼던 글 몇 편이 시작이 되어 이렇게 잡지에 글을 연재할 수 있게 됐고, 그러다 자신감이 붙어 꾸준히 글을 쓰다가 올해는 책도 펴냈거든. 앞으로 쓰고 싶은 글들이 참 많은데 그 시작이 바로 너였다는 걸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거야.

 

행복해지고 싶어

  너의 꿈은 뭘까? 말 못 하는 너를 두고 함부로 추측하는 건 아주 별로인 것 같지만 하나는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맞지 않을까 싶어. 바로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말이야.


  처음 우리 집에 오고 나서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 어떤 할머니가 강아지가 몇 살이냐고 묻고선 “왜 이렇게 늙어 보여?”라고 툭 내뱉었던 때가 기억나. 그때 나는 너무 속상하고 분했었는데, 점점 너도 살이 붙고 눈물 자국 역시 사라지면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예쁘다는 칭찬을 듣게 됐잖아. 사람이나 개나 외모가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네가 우리 집에 온 뒤로 엄청나게 예뻐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조금씩 산책의 즐거움을 알아가던 네 모습도 생생해.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거리에서 만난 다른 개 친구의 냄새를 맡기도 했지.


나는야 연예견 크리스

  처음으로 차 타고 드라이브했던 것. 처음으로 같이 한강에 가서 텐트를 쳤던 것. 사실 나도 그때 다 처음으로 해봤던 거야. 평생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한강에서 텐트 치고 놀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는데, 아마도 너랑 함께여서 가능했던 게 아니었나 싶어. 네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집에 한창 크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참 자연을 많이 즐겼어. 저번 초가을 캠핑 때도 그래. 그땐 생각보다 너무 추웠잖아? 해가 떨어진 후에는 같이 별을 보고, 너무너무 추워서 그때 꼭 껴안고 잤었지.


  아 맞다, 너는 이제 잡지에도 나오는 개야. 우리끼리 얘기지만 사실 가끔 너를 ‘연예견’이라고 부르기도 하잖니. 네겐 발표되지 않은 주제곡도 있잖아. 노래 가사를 처음으로 공개해보면 이래. 「가족들이 모두 외출을 하고 나면 나는 거울을 본다네. 거울 속 내 몸은 온몸이 꿈틀꿈틀. 몸통은 좀 길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아. 왜냐면 난 유럽의 인기 견종 말티푸, 말티푸, 말티푸.」


크리스. 앞으로는 더 많은 걸 함께 즐기자. 같이 여행도 많이 가고, 수영장도 함께 가자. 별 보러 캠핑장도 또 가고, 성대한 생일 파티도 열어줄게. 커다란 추억들을 만들 면서 우리, 무엇보다 평범한 서로의 하루하루에 늘 함께하자. 그리고 그게 무엇 보다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걸 언제나 기억하자. 너의 여섯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글·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P 2020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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