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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하맹이의 언어

  • 승인 2021-10-01 14: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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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거실에서 하맹이가 울고 있다. 평소 말수가 적은 하맹이었기에 그 수다스러움이 의아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하맹이에게 갔다. 이름을 몇 번 부르고,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외로웠는지를 물었다. 물론 사람의 언어로. 

 

뭐라고 하는 걸까? 

하맹이는 벌러덩 누워 간헐적으로 울었다. 그 소리가 보편적으로 고양이 소리로 알고 있는 “야옹”은 아니었고 “뀨구룩”거리는 비둘기 소리에 가까웠다. 왜 이럴까 생각하며 하맹이 머리를 쓰다듬다 우연히 엉덩이 쪽을 봤다. 묽은 변을 봤는지 털들에 대변이 묻어있었다. 오후가 돼서도 나아지지 않아 다음날 하맹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고 약을 먹였다. 며칠간 하맹이 엉덩이만 바라보다 마침내 화장실에서 정상적인 변을 발견했을 때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날 저녁, 같이 사는 친구인 덕우에게 하맹이의 설사가 멎었다는 말을 전했다. 덕우는 다행이라 말하며 문득 이 런 말을 꺼냈다. “하맹이는 고양이 말을 할 줄 알까?” 그 러고 보니 나도 의문이 들었다. 하맹이는 태어난 지 2개 월이 조금 지났을 때 내게로 왔다. 형제들, 그리고 어미 고양이와의 유대가 형성되고 나서 데려왔어야 하는 건 데. 너무 이른 시기에 데려온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말 하자면 나는 아직 엄마의 ‘ㅇ’도 발음하기 전에 생이별을 시킨 과오를 범한 것이다.

 

제2외국어: 하맹어를 배워보자

  덕우 말처럼 하맹이는 고양이 말을 할 줄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실제로 얼마 전 카페에 방문한 손님들이 새침한 하맹이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유튜브로 고양이 소리를 튼 적이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 같은 그 소리에 나를 비롯한 다른 손님들은 눈살을 찌푸린 것에 반해, 하맹이는 그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정황들로 미루어 봤을 때 하맹이는 고양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신 하맹이는 자신만의 경험으로 터득한 언어를 만든 것 같았다. 평범한 고양이처럼 “야옹”이라고 울지 않고 비둘기처럼 “꾸르륵”, 포켓몬처럼 “미뇨옹” 하고 운다. 고양이의 언어를 배우지 못하게 한 것이 내 잘못이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맹이를 유심히 관찰해 ‘하맹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하맹어는 어려워

  평소보다 관심을 쏟은 결과 조금이지만 하맹이의 언어를 이해하게 됐다. 우선 하맹이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하맹”하고 내가 이 름을 부르면, 하맹이는 귀를 쫑긋거리거나, 꼬리를 흔들거나, 입을 벌려 소리를 낸다. 또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땐 평범한 고양잇과 범주에 들어가는 울음소리인 “야앙, 꺄앙” 소리를 낼 때도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문 앞에서 이런 소리를 내면 “문 열어!”, 밥그릇 앞에 서 소리를 내면 “밥 줘!”이다.

  반면에 “꾸륵, 미뇨옹, 갸갸각” 같은 미스터리 한 소리는 감정을 나타낸다. 반나절 이상 혼자 집에 있다 내가 현관문을 열면 쏜살같이 달려와 허벅지에 몸을 비빌 때, 간식 서랍을 열었을 때, 자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오랜 시간 쓰다듬거나 품속에 억지로 안으면 심기가 불편해 이런 소리를 낸다. 마지막으로 눈을 깜박여 의사를 전달한다. 주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눈을 마주쳤을 때 깜박이는데 ‘안녕?’이라던가 ‘뭘 봐?’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눈을 깜빡이며

  어젯밤에는 하맹이가 베란다 문 앞에서 “야앙”소리를 내서 문을 열어줬다. 그러자 하맹이는 쏜살같이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구경했다. 아마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코를 벌렁거리는 모습을 보며 하맹이와 하맹이의 언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했다.

  우선 너무 어릴 때 데려와 고양이들 간의 유대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것, 매트리스에 오줌을 쌌을 때 꼬리를 세게 잡았던 것, 설사해서 배가 아플 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이다. 그러면 하맹이는 아마 나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을 할 테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안도의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날을 반성하며 베란다에 있는 하맹이에게 아직은 서툰 하맹어로 말한다. 눈을 깜박이며 “야앙! 꾸르륵!”

  안녕, 나는 너를 좋아한다, 그래서 행복하다.

글·사진 양세호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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