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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COEXISTENCE

  • 승인 2021-10-01 14: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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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에게 겨울은 정말 가혹하다. 털옷을 아무리 두껍게 입어도 매서운 바람은 털과 살을 파고들어 추위를 새기니, 그저 봄이 오길 기다리며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음식을 찾기 힘들어 배를 주려도, 마실 물이 얼어붙거나 잔병에 걸리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한다. 

 

어디 아픈거야, 호평아?

  2020년 1월, 한동안 안 보이던 호평이가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났다. 평소 우리가 만나던 곳이 아닌 집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이름을 부르니, 호평이는 마치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크고 간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거의 울지 않던 아이였기에 불안한 예감과 함께 걱정이 밀려왔다. 역시나 가까이 다가온 호평이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호평이는 이제 눈곱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길고양이를 챙겨왔지만 이렇게까지 아픈 모습은 또 처음이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호평인 애교를 부리며 얼굴을 내 다리에 비벼왔다. 꼭 나를 믿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이 아이를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 돌보아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편히 찾아와주렴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고양이의 눈병에 대해 찾아보던 중, 가장 의심스러운 병명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고양이 감기라고도 불리는 ‘허피스바이러스’였다. 바로 다음 날 동물병원에 찾아가 의사 선생님에게 호평이의 사진을 보여준 뒤 약을 처방해왔다. 신기하게도 호평이는 그날 이후로 열흘간 꾸준히 집 근처로 찾아왔고 나는 매일 호평이에게 약을 섞은 츄르를 주었다. 상태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호전되었고, 마침내 호평이의 눈은 완전히 나았다.

  그 이후로 호평이는 다시 애교를 부리지도, 굳이 집 근처로 찾아오지도 않았다. 자신이 아프다는 걸 알고, 살기 위해 나를 찾아왔던 걸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호평이처럼 다른 고양이들도 나를 편히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네 고양이들을 챙겨주고 있다.

 

온기를 나누며

  고양이의 털을 보면 겨울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도 추우면 패딩을 꺼내 입듯이 길고양이는 길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두꺼운 털옷을 준비한다. 작은 변화지만 길고양이 역시 나름대로 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빈집이나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창고에서 지내거나 주차된 차 밑 엔진룸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추위를 피하려 노력하지만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겨울에 병을 얻는다. 코가 막혀있거나 눈에 피눈물이 흐르고 수시로 기침하는 모습은 겨울철 길고양이들에게 예삿일이다.

  얼마 전부터 삼 남매 고양이들을 챙겨주고 있는데, 요즘 내가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하는 일은 눈물과 콧물을 일일이 닦아주는 것이다. 그럼 눈곱 때문에 눈꺼풀이 붙거나 콧물이 굳어 코를 막는 경우를 막을 수 있어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예방할 수 있다. 삼 남매 중에서도 베베는 제일 덩치가 작고 말라서 유난히 감기에 잘 걸린다. 게다가 기침도 심하고, 콧물은 볼 때마다 줄줄 흘리고 있다. 다른 형제들보다 추위를 훨씬 많이 타는지 나만 보면 항상 무릎 위로 점프할 기회를 노린다. 그렇게 무릎 위에 올라오면 베베는 내 다리에 쥐가 나기 전까지는 먼저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추워서 무릎 위로 올라오는 베베와 페페를 보면 안쓰럽지만, 몸을 동그랗게 말고 골골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배척하기보단 공존을

  길고양이를 돌보며 인상 깊었던 일이나 안타까웠던 부분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무거운 분위기의 글이 되어버렸는데, 몇 가지 알아주셨으면 하는 게 있다. 먼저, 길고양이라고 다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길생활에 적응하여 나름대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햇볕이 예쁘게 내려올 때 일광욕을 한다거나 친구 고양이와 뛰어노는 등의 즐거움 말이다. 모든 길고양이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한다. 그저 길에서 태어났기에 길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에겐 경멸의 눈초리보단 사료와 물을, 날카롭고 큰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에겐 TNR 신청을, 추운 겨울 골목 한구석에 놓인 밥그릇을 엎어버리기보다는 따뜻한 이해의 눈빛을 보내주신다면, 고양이와 사람 모두가 공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사진 왕보경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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