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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A WARM GAZE

  • 승인 2021-10-08 09: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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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옹이와 함께한 뒤 가장 달라진 건 바로 우리의 ‘시선’이었다. 다른 길고양이들을 향한 시선.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도, 시동 꺼진 자동차 밑이나 골목에서 고양이들을 만나면 자동으로 걸음이 멈췄다. 

 

잠깐만, 어디 가면 안 돼!

  요즘 나는 가방에 간식을 하나씩 들고 다닌다. 그러다 하필 간식 챙기는 걸 까먹은 날,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은 다급해진다. “잠시만 기다려, 어디 가지 마!” 하고 말한 뒤 근처 편의점으로 후다닥 뛰어가 캔이나 간식을 사서 다시 돌아온다. 고양이가 캔을 먹기 시작하면 그게 얼마나 기쁘고 고맙던지. 반면 고양이가 사라지면 아쉬운 마음에 나는 그 자릴 뜨지 못하고 한참 동안 두리번거린다.
 
  변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야심한 시각, 동네 산책을 즐겨 하시는 아빠는 내게 종종 전화를 걸어 “집에 사료 좀 있나?” 하고 말씀하신다. 동네 고양이들을 만났으니 사료와 간식, 물을 챙겨서 내려와 달라는 신호이다. 나는 곧 사료와 간식, 물, 그리고 깨끗한 플라스틱 용기를 챙겨서 내려간 뒤 정자 밑으로 사료와 물을 가득 담아 넣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고양이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본다. “흰둥이가 오려다가 다시 도망갔어. 흰둥이도 와서 밥 좀 먹어야 할 텐데.” 아빠는 이미 이미 동네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신 듯했다.


아주 조금만 너그럽게 

  집 근처에 내가 자주 가는 조그만 치킨 가게가 있는데, 사장님 두 분께서는 그 주변 고양이들을 돌봐주고 계신다. 스크래쳐도 준비해 주시고, 추운 날엔 작은 난로까지 틀어주신다. 나도 작은 도움이 되고자 출퇴근할 때마다 가끔씩 간식이랑 사료를 가져다드리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치킨집에 자주 오는 치즈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한 번은 포장하러 오신 손님이 문밖에 앉아있는 그 고양이를 발로 차려고 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사장님은 일부러 고양이에게 말하는 척하면서 그 손님 들으라고 이렇게 소리치셨다고 한다. “네가 여기 있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발로 차려고 하잖아!” 그러자 그 손님은 당황하면서 조용히 치킨을 받아 갔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에게 되레 내가 미안해졌다.



  그 뒤로 사장님은 고양이 집 앞에 커 다랗게 ‘고양이 물고 할퀴어요’라고 써 놓으셨다. 요즘엔 그 말이 사람이 아닌 고양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써 놓으신 거란 생각이 든다. 모두가 길고양이를 좋아할 순 없다는 건 잘 안다. 각자가 처한 상황도, 경험도, 생각도 모두 다 다를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발로 차거나 괴롭히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늘어나는 고양이 개체 수가 걱정된다면 시청에 TNR 신청을 할 수도 있고,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것이 문제라면 고양이의 발톱이 뚫을 수 없는 튼튼한 쓰레기 수거통을 설치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아주 조금만, 정말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길 위의 고양이들을 바라봐준다면, 아마 많은 게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시선을 바꾸는 일 

  올해로 레옹이와 함께한 지 꽉 채운 4년째다. 레옹이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공기도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밖에 있어도 레옹이가 식빵 굽는 모습을 상상하면 무엇보다 레옹이는 우리 가족의 ‘시선’을 바꾸었다.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길 위의 고양이들의 삶에 대해, 그 아이들이 겪을 배고픔과 추위에 대해 상상하게 했다. 앞으로도 레옹이가 내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기를, 그래서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는 올해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


글·사진 이예진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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