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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이제 나는 노련한 고양이야

  • 승인 2021-10-12 10: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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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경험치 

  이따금씩 틸다에게서 연륜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해맑던 천둥벌거숭이 시절, 틸다는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던 착한 고양이였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지난 지금, 틸다는 걸핏하면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나를 빤히 바라보곤 한다. 그동안 내가 집사로서의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던 것처럼, 틸다도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노련해진 것 같달까.

  어제까진 분명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좋아하던 장난감인데, 다음날이면 거들떠보지도 않아 찬밥 신세가 된다던가, 간식 통 흔드는 소리만 들려도 우다다다 달려오던 틸다가 간식을 눈앞에 두고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던가. 심약한 나는 틸다가 그럴 때마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괜히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비슷한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틸다는 아픈 게 아니라, 그저 웬만한 일에는 쉽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 시큰둥한 고양이가 되었을 뿐이라는걸…. 

 

시큰둥한 변덕쟁이

  먹어본 것도, 가지고 놀아본 것도 많은 냥생 7년 차. 그런 틸다의 변덕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만 같다. 내가 장난감을 열심히 흔들어도 틸다는 선심 쓴다는 듯이 발만 까딱까딱 흔들 뿐, 절대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매일매일, 눈 높은 틸다의 흥을 돋을 수 있을까?’이다. 하지만 신상 장난감을 사줘도 하루만 지나면 눈길도 주지 않는 덕분에 나까지 의욕을 잃어버리는 현실이다.

  혹시나 하며 예전에 좋아했던 천 소재로 장난감을 만들어줘도 틸다가 가지고 노는 건 정말 잠시뿐이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고양이는 나이가 들수록 활동량이 적어지면서 자연스레 신체 활동에 대한 흥미 또한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고양이 중에도 호기심 많고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그런 경우를 보면 아이의 활발한 성격에는 집사의 역량도 한몫하는 것 같아서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육묘에 정답은 없지만, 사랑스러운 틸다가 즐거운 묘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에 책임감을 더욱더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2020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와 틸다는 그 이전해 보다 훨씬 많은 순간을 함께했다. ‘이번 팬데믹의 최대 수혜자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있던데 과연 틸다도 그렇게 느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잘 모르겠다. 괜히 잘 자는 애를 보면서 예쁘다며 만지작거리고, ‘이거 해볼까? 아님 저거 해볼까?’ 하며 놀아준다는 이유로 되레 귀찮게 한 적이 더 많은 것 같다. 그전에는 잠깐이지만 틸다 혼자만의 시간도 있었고, 우리가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현관에 마중 나오는 재미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틸다도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특별한 흥미 거리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삶에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새해에는 나도 바깥 활동을 하고 틸다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주면서,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



우리의 소원은 만수무강

  매년 새해 자정마다 나는 똑같은 소원을 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주변에서도 틸다가 이제 청년기를 지나 중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새로운 고양이 영양제를 장바구니에 골라 담고 있더라. 그나마 다행인 건 틸다가 맛없는 영양제를 참고 먹으면 보상으로 최애 간식도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틸다는 영양제 통의 뚜껑 여는 소리만 나도 곧바로 어디선가 달려온다. 그리고는 한껏 기대에 찬 눈으로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아 빨리 달라며 보채기까지 한다. 이럴 때 보면 틸다는 참 단순하고 착하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노련한 고양이랄까?

  100세 시대인 요즘, ‘인생은 중년부터’라는 말처럼 우리 틸다도 앞으로 더 밝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라본다. 틸다야, 내가 앞으로 더 노력할게!

글·사진 송지영
에디터 한소원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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