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찌로고

MAGAZINE C. 나의 라임 오렌지 고양이

  • 승인 2021-10-15 11:26:14
  •  
  • 댓글 0

 

 

  학창 시절, 학원이나 야자를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올 때면 참 슬펐다. 하루의 끝에서 바라본 우리 집 창문은 늘 검은색이었다. 불 꺼진 집에 돌아와 괜히 온 방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던 나는 강아지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언제나 문 앞까지 꼬리를 흔들며 뛰쳐나와 나를 반겨줄 강아지.

 

나를 붙든 사진 한 장
  대학교 입시가 끝난 어느 날, 나는 무작정 강아지 입양 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털이 보송한 포메라니안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 털이 보송한 작은 강아지는 너무 ‘비쌌다’. 요즘도 동물의 값을 따지는 문화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들이 지금보다 더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내 동물권 감수성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무조건 예쁘고 작고 어리고 건강할 것. 하지만 몇 날 며칠을 뒤져도 작고 어리고 건강한데 가격도 적당한 포메라니안은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하루아침에 강아지를 포기하고 고양이 게시판에 발을 들였다.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저렴한 데도 예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창피해서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말이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때마침 내가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가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원래 이유 없이 고양이를 싫어해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차츰 낮아진 고양이에 대한 벽은, 입양 카페의 고양이 게시판에서 잔뜩 흔들린 어느 새끼 고양이의 사진을 발견한 순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란 이런 것이구나 

  팔뚝만 한 크기의 노란 새끼 고양이었다. 짤막한 글이 사진 아래에 적혀 있었다. “너무 빠르게 움직여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네요.” 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얘를 데려와야겠다’. 그저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 없을 정도로 활동적인 저 고양이가 건강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바로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았다. 엄마를 겨우 설득해 입양비를 챙겨 들고 혼자 버스에 올랐다.

  보호자를 기다린 지 몇 분쯤 지났을까. 고양이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나타났다. 곧 군대에 가야 한다며, 그는 자신의 까까머리를 머쓱하게 만졌다. 작은 가방에 담겨 나온 고양이는 연신 삐약삐약 울어댔다. 아, 새끼 고양이란 이런 것이구나. 야옹야옹 울지 않고 삐약삐약 우는구나. 고양이를 조심스레 안아 들고 이름과 생일을 물었다. 그런데 그는 이름도 새로 지어주라며 생일도 모른다고 했다. 아마 얼떨결에 고양이를 떠맡게 돼 어 쩔줄 모른 채 데리고만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딱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집에 가면 몇 시간, 며칠 동안 구석에 숨어 나오 지 않을 수도 있는데 괜찮다고. 적응되면 알아서 나올 거라고. 

 

한 순간 가족이 되다 

  그렇게 보호자와 헤어진 후, 나는 택시에 고양이 화장실과 사료를 싣고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는 가는 내내 쉬지 않고 울었다. 먕먕. 매옹매옹.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가는 내내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그제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나쁜 일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어디로 숨어버리진 않을까? 나를 싫어 하진 않을까?

  고양이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마자 삐약거리며 온 집안을 탐험했다.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세상의 모든 것을 경계하며 집안 곳곳을 살폈다. 그렇게 5분이나 지났을까? 경계하는 발걸음도 잦아들고 울음소리도 멎었다. 전에 길렀던 햄스터가 두루마리 휴지심을 좋아했던 게 기억이 나, 고양이에게 휴지심을 굴려주자 녀석은 바로 그걸 껴안고 데구루루 굴렀다. 그러다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어버리는 그 모습을 엄마와 함께 바라보며 한없이 웃었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지만 전부 기억난다.

  가족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작은 새끼 고양이가 내 방에서 뜀박질하며 놀기 시작했을 때, 그 모습을 보며 엄마와 내가 웃었을 때, 단지 그 한순간,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2010년 1월 2일의 일이었다.


글·사진 오분나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불법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Tag #펫찌
저작권자 ⓒ 펫찌(Petzz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0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