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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다행이야 네가 있어서

  • 승인 2021-10-26 08: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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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대책 회의 

  이전엔 외출하면 고양이들이 떠올라 서둘러 집에 돌아갔다. 명절이나 휴가가 주어져도 외박을 할 수가 없어 당일 돌아오거나, 지인에게 집에 들러 고양이를 한 번 살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혹시나 배를 곯진 않을지, 빼꼼 열린 서랍의 틈새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 한편이 늘 불편했다. 어느 순간 외출이 즐겁지 않게 느껴졌고, 약속이 생기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다. 고양이가 아닌 나에게 분리 불안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작은 인간이 태어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아기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도 마음도 금세 지쳤다. 시계는 어찌나 느리게 움직이는지, 하루가 길어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집순이 그 자체였던 나는 종종 집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돌아가던 시곗바늘도 집 밖에서는 다시 제 속도를 찾은 것 같았다. 위기감을 느낀 고양이들이 나를 집에 머무르게 하려고 자기들끼리 대책 회의라도 한 것일까? 나의 외출 빈도가 늘어나자, 고양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육아 도우미를 자처했다.
 

 

새로운 육아 도우미 찡가와 찡콩

  아기 집사가 울면 우리 집 첫째와 둘째인 찡가와 찡콩이는 울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한걸음에 달려간다. 그리곤 곁에 앉아 아기를 바라보거나, 나에게 ‘아이가 울고 있어요!’ 하고 알려주듯 함께 야옹 야옹 소리를 내준다. 또 아기가 서툰 몸놀림으로 비적비적 집 안을 돌아다니면, 높은 곳에 올라가 상황을 지켜보며 안전을 챙겨주기도 한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기가 배밀이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로봇 청소기가 아기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드르륵드르륵 움직이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한 찡콩이는 그 앞을 막아서더니 단호한 앞발로 청소기를 밀어내 아기를 지켜줬다. (정말이다!) 돌보는 눈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아기가 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심지어 내가 집안일을 할 때면 고양이에게 아기를 맡기기까지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집 밖보다 아기를 함께 돌봐주는 보호자가 많은 집이 더 편해졌고, 자연스럽게 내 외출 빈도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나를 집에 머물게 하려는 고양이들의 작전은 성공!
 

 

고양이 아빠가 생기다

  아기 집사가 태어난 지 어느덧 10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아기 집사와 고양이의 관계 또한 돈독해졌다. 물론 7마리의 고양이들이 다 아기와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같은 고양이들끼리도 더 친하고 덜 친한 사이가 있듯이, 여전히 소리지르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작은 인간을 보면 도망가는 쫄보가 있는가 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한 아이도, 호시탐탐 아기 집사의 물건을 탐내는 아이도 있다.

  그리고 나의 육아 도우미를 맡고 있는 찡가와 찡콩이는 아기 집사와 나름의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특히 찡콩이는 때론 단짝 친구처럼, 때론 아빠처럼 아기 집사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아기 집사는 이제 막 서툰 발음으로 ‘엄마, 아빠’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아기 집사는 자신을 돌봐준 찡콩이에게서 아빠와 같은 따뜻함과 든든함을 느꼈는가 보다. 종종 찡콩이를 보며 “아빠빠바!”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아직 뭘 모르는 아기의 입에 나온 ‘아빠’란 말은 나의 찡콩이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준 건지 가슴 깊이 느끼게 해줬다.
 

 

고양이라는 행운

  제아무리 집순이라 해도, 내 의지로 집 안에 머무르는 것과 나갈 수 없어 집에 머물러야만 하는 건 차이가 무척 크다. 코로나로 인한 답답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맘대로 나갈 수도 없는데, 육아도 나 홀로 감당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찡콩이 뿐 아니라 아기 집사를 피해 도망가는 모카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웃음이 터지고, 늘 아기 집사의 물건을 자신이 똑같이 따라 쓰는 모모를 보면서도, 그리고 순간순간 다른 고양이들의 엉뚱한 행동을 보면서 하루에 몇 번이고 웃음이 터진다. 누구에게나 버거운 육아임에도 건강한 에너지와 웃음을 주는 고양이들의 존재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나에게 고양이가 있다는 건, 무엇보다 커다란 행운이다.


글·사진  황류리아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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