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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 내 시간은 전부 너였단다

  • 승인 2021-10-29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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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10살이 된 호두는 사실 길에서 구조된 일명 ‘스트릿(street)’ 출신의 고양이입니다. 다들 지금의 호두를 보면 묘생 역전을 했구나 하시는데요. 사실 반대예요. 인생 역전을 한 건 바로 저와 남편이랍니다.


두 B형의 만남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진짜 어른이 된다고들 하던데, 저희는 호두를 반려하면서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당시 학생이던 우리 부부는 연애하는 내내 참 열심히 싸우고 심지어는 몇 번 헤어진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호두를 만나고부터 참을성과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죠.


  저와 남편은 동물을 반려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했던 남편의 호기심 덕분에 우리의 묘연은 시작되었거든요. 돈이 없던 학생 시절 우리 부부는 뭐든 열정으로 대체해야 했습니다. 박스를 주워다 하나하나 잘라 스크래쳐를 만드는가 하면, 전공 서적을 쌓아 캣타워를 만들어 준 적도 있었네요.(웃음)


그리고 더 까칠한 고양이
  너무 서툴고 무지했던 탓이었을까? 그 자그마했던 새끼 고양이는 저희가 쌓아 올린 전공서적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게 됩니다. 당시 호두는 마취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아이였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네요. 어쩔 수 없이 호두는 그대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당시 의사 선생님께서 남자분이셨다는 이유로 남자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저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은 모두 거부하는 상태. 우리가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죠. 하지만 호두의 경계심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대신 우리가 더 큰 사랑과 관심을 호두에게 쏟기로 했답니다.
 

 

맘이 열리네요 우리가 들어가죠

  길에서 태어나 엄마를 잃고 비닐봉지 옆에서 발견된 호두는 지금도 비닐봉투만 보면 그렇게 열심히 핥아요. 비닐봉지가 호두의 어릴 적 추억인 걸까요? 저희가 보여준 사랑에 화답하듯 시크한 호두는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아플 때는 ‘냥냥 난로’를 가동해 곁을 지켜주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보다 절 많이 의지하는 편입니다. 여행을 간다거나 집을 오랫동안 비우게 될 때는 가족들에게 호두를 부탁하는데 아무리 맛있는걸 챙겨주더라도 이틀 정도는 먹지 않고 기다린대요. 그럴 땐 맘이 참 쓰여요. 걱정 마. 널 두고 어디 안 갈 거야, 호두야.

바쁜 집사를 위해 호두가 도와줄게!
  사랑하는 집사를 위해 호두가 날마다 하는 일이 있어요! 바로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 깨워주기! 일정한 패턴으로 사는 집사가 혹시라도 늦잠 잘까 싶어 알람 시계 역할을 도맡아 하죠. 또 제가 바빠서 밥그릇을 채우는 걸 잊었을 때면 제 귀에 대고 ‘야옹’, 솜방망이 같은 손으로 제 다리를 툭툭 쳐 알려주곤 하죠. 바쁜 집사를 배려하는 호두, 철든 고양이 맞죠?

 

온통 너로 가득하단다

  돌이켜보면, 알게 모르게 저와 남편을 향한 호두의 다정한 몸짓과 눈빛이 우리를 더 큰 어른으로 만들어 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쭉 우리 부부도 호두의 묘생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주려고요. 만약 당신이 반려동물을 맞이하고 싶다면, 부디 깊이깊이 생각해주시길 바라요. 호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그 작고 빛나는 눈동자 속에는 저와 남편의 실루엣으로 온통 아른거려요. 그만큼 반려동물들에게 우리는 그야말로 ‘전부’랍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호두야, 널 만난 건 우리 인생 최고의 행복이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글·사진  호담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1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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