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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육아, 혼자가 아니기에

  • 승인 2021-11-02 09: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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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싸개 속 동생의 냄새를 적극적으로 맡던 구찌. 3주간 엄마 없이 지내서일까? 구찌와 쿤이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둘 다 눈곱이 잔뜩 끼고 털은 덥수룩해졌다.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꼬질꼬질한 것이 엄마 없이 지낸 게 어찌나 티가 나던지, 꼭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엄마가 있어야 한다니깐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하면서도 ‘역시 엄마가 집에 있어야지?’라는 생각에 계속 웃음이 나왔다. 분명히 예쁘게 미용하고 목욕까지 싹 시키고 떠났는데, 밥은 그새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털은 한껏 자라 여기저기 엉켜 있었다. “우리 아가들 잘 있었어? 근데 여보! 구찌랑 쿤이가 왜 이렇게 커진 것 같지?” 요녀석들, 아빠가 밥도 간식도 많이 주니 엄마 생각은 하나도 안 났나 보다. 분리 불안은 나만 있었던 거야?
 


 

육아 시작! 우연인가? 

  책으로는 많이 읽었지만 실전은 다르겠지? 나 혼자 육아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밤을 홀딱 새 버렸다. 아기가 뒤척이기만 해도 바로 눈이 떠졌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새벽 수유. 구찌랑 쿤이가 외롭지 않게 내 옆에 있어 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거 참,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구찌가 워낙 듬직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듬직해도 너무 듬직하다.

  이틀 뒤, 육아가 서툰 초보 엄마는 결국 아기를 울리고 말았다. ‘배가 고파요, 응애응애!’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구찌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급하게 방에 들어온 구찌는 내 침대와 아기 침대 사이 비좁은 공간에 얼굴을 들이밀더니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아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 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엄마, 엄마가 아기 울렸어요?’라는 듯 말이다. 구찌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응? 구찌야, 엄마가 울린 거 아니야!” 하고 말하니 구찌는 아기를 한 번 더 쓱 살피고 나서 다시 거실로 나갔다. 뭐지? 우연인가?
 


 

구찌 언니의 육아일기 

  으아앙! 아기가 또 울기 시작했다. 응애응애 소리가 나면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구찌는 한달음에 달려온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그 후로도 계속 구찌는 아기가 울면 자다가도 뛰어와 침대 사이에 머리를 넣고 꼭 아기를 확인하고 나갔다. 귀여우면서도 신기하고 대견했다.

  하루는 친정엄마가 3일간 휴가를 내고 아기를 돌봐주러 오셨던 적이 있다. 엄마와 거실에서 자려고 이불을 펴고 아기 침대를 거실로 꺼내왔는데, 구찌가 다가와 이불과 침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더니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리고 불편하지도 않은지 그 대로 잠이 들었다. 구찌의 일상도 아기가 태어나고 조금은 바뀐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배고파 우는 아이를 살피는 게, 분유를 기다리며 울고 있는 아기를 달래주듯 발을 핥아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제 시선이 닿는 공간에 아기를 뉘면 어김없이 따라와 냄새를 맡고 옆에 눕는다. 목욕 시간에는 깨끗이 씻기고 있는지 욕조에 턱을 괴고 감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찌에게 별명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찌어머니’! 구찌와 시어머니의 합성어다.



기다림 끝에 얻은 보석
  우리 부부는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이전에 받은 수술로 자연임신이 어려워 여러 번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고, 3년 만에 드디어 아기가 찾아왔다. 내 상황을 모르는 주변 어른들은 내가 동물들을 너무 예뻐해서 아기를 주지 않는 것이라 했다. 아기에게 줄 사랑을 전부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주고 있으니 아기가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시험관 시술은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가장 힘든 시술이다. 기다림의 연속이고 그 기다림이 실패로 끝나버릴 때 찾아오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우울증 또는 공황장애로 시술이 중단되기도 한다. “포기하면 성공한다더라”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된다더라”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늘 구찌와 쿤이, 그리고 지금은 고양이 별로 소풍 간 랭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늘 한결같이 나만 바라봐 주고, 나는 그 아이들을 챙겨주어야만 한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하루가 짧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나는 다음 시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6번 만에 시술은 성공했고 출산 까지 했다.



나의 버팀목
  임신 후에는 애 하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개, 고양이를 같이 키울 거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육아? 힘들다. 너무너무 힘들다.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갈 수 없다. 샤워 한 번 하려면 아기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독박 육아에 코로나19로 가벼운 산책조차 어려워진 이 상황은 더욱더 나를 힘들고 답답하게만 한다. 하지만 나와 아기 곁에는 언제나 구찌와 쿤이가 있다. 구찌와 쿤이를 보며 로늬는 오늘도 까르르 웃는다. 구찌와 쿤이는 앞으로도 로늬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이자 부모가 되어 주겠지. 맘속으로 작은 미소를 지으며, 오늘도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글·사진  전소영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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