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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부끄는 부끄러워요

  • 승인 2021-11-04 10: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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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부끄를 만나셨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해요. 음, 남편은 어릴 적에 허스키를 키웠대요. 하지만 끝까지 책임질 수 없어 다른 분께 보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나 봐요. 그리고 저는 동네 캣맘이었고요. 둘 다 동물을 참 좋아하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저희가 이미 중년이라 조금 더 미뤘다간 힘 좋은 허스키를 키우지 못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제게 물었어요. “우리, 강아지 키울까?” 그 말에 제가 내건 조건은 하나. “보호소에서 데리고 오면 좋겠다” 였지요.

허스키 부끄는 부끄럼쟁이
  이곳저곳에서 유기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SNS에서 허스키 한 마리를 봤어요. 마른 체구의 허스키가 구조되어 드림독 쉼터로 가게 되었다고요. 바로 부끄였죠. 보통 보호소 강아지들은 사람을 참 잘 따라요. 그런데 부끄만큼은 예외였어요. 간식을 먹기는커녕 손짓만 해도 피하고 숨고. 그런데도 왜 부끄를 데려왔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아마 부끄의 순하고 맑은 눈빛에 끌린 것 같아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일주일 뒤, 저희 부부는 부끄를 집에 데리고 왔답니다. 부끄럼쟁이 허스키니까, 이제부터 네 이름은 부끄야!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줄래? 

  부끄가 마음의 문을 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랑 남편이 잠자리에 들어야만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참 미안하고 초조하더라고요. 입양 당시 부끄는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있었고, 탈장에 곰팡이 피부염, 그리고 자궁축농증까지… 앞니도 다 갈려 있었고요. 사상충을 치료할 때는 몸 안의 벌레를 죽이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쇼크사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하루 입원을 시켰는데, 글쎄 데리러 간 날 부끄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거예요.

  그전까지는 사실 ‘뭐 엄마 아빤가 보다~’ 심드렁했던 부끄였는데, 그 날은 꼬릴 흔들고 얼굴에 온통 뽀뽀를 하고 정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아마 부끄도 그때부터 저랑 남편을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 알았어요. 재촉할 필요가 없다는 걸,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부끄를 기다려주면 된다는 걸요. 조금은 느리지만, 부끄 역시 부끄만의 속도로 우리 부부에게 마음 문을 열고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자기 이름도 모르고 주눅 들어 있던 작고 마른 허스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끄야~”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오고요. 그때의 감동이란, 이건 정말 유기견을 입양해 보지 않은 분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끄의 트라우마 

  부끄가 번식견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어요. 그래서일까, 부끄에게는 몇 가지 큰 트라우마가 있어요. 무엇인가 타는 냄새, 그리고 검은색 모자를 쓴 중년 남자를 극도로 무서워해요. 심지어는 장작불에 고기가 타는 냄새에도 공포심을 느끼죠. 사실 이건 번식장에서 구조된 많은 개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트라우마라고 해요. 아마도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몹쓸 짓을 한 것은 아닌가… 그렇게 저와 남편은 추측하고 있어요. 저희는 산책할 때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무조건 멀리 돌아서 가요. 부끄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힘들어하거든요. 다른 건 정말 많이 좋아졌는데 이것만은 잘 극복이 안 되네요. 보통의 개들이라면 고기 굽는 냄새를 무지 좋아할 텐데, 마음이 참 아프고 슬퍼요.

엄마 아빠 좋아, 산책 좋아!
  다른 강아지들은 좋아하는 게 참 많죠? 특별히 좋아하는 간식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다른 강아지 친구들도 있고요. 하지만 부끄에게는 엄마, 아빠, 산책뿐이에요. 아마 새끼 시절 사회화가 잘 안되어서 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역시나 좀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부끄는 참 밝고 순한 아이예요. 특히 산책을 참 좋아해요. 마치 그동안 돌아다니지 못했던 게 아쉽기라도 한 것처럼요. 처음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저 무섭고 낯설어 피하기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 산책의 맛을 알았는지 “산책 가자!”는 소리만 들리면 신나 해요. 사람 손을 탄 적이 없어 처음에는 한 발 내딛는 것도 어려워했지만 금세 적응하더라고요. 이제는 산책을 빼고선 부끄를 논할 수가 없을 정도예요.

 

언제나 부끄의 편이 될 거야 

  강아지의 시간은 참 짧고도 빨라요. 가끔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사랑해 줄 수 있는 만큼 부끄를 더 사랑해 주려고요. 2년 동안 번식장에서 무섭고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 그동안 못 누렸던 것들도 다 누리게 해주고 싶어요. 끝까지 변하지 않는 부끄의 편이 되어주고 싶어요.

  쉼터 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부끄를 비롯한 번식장 아이들이 구조가 되지 않았다면, 식용견으로 팔려나갈 뻔했다고요. 식용견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너무나 맑은 눈을 가진 그 아이는 지금 제 곁에서 이렇게 예쁘게 지내고 있네요. “무조건 유기견을 키우세요” “유기견을 입양하세요”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한 번쯤은 부디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부끄처럼 다 큰 개들도 충분히 새로운 가족 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요. 여전히 많은 아이가 버려지고 있어요. 강아지들도 생명이랍니다. 다 느끼고, 행복해하고, 슬퍼해요. 부디 이 땅의 모든 보호자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반려견과 함께하시길 바랄게요. 아,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는 누 군가가 새로운 가족을 고민하신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긁지 않은 복권들이 많아요. 부끄처럼요!” (웃음)

글·사진  신호정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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