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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고요한 행복

  • 승인 2021-11-10 1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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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름다운 너, 몽이

  몽이는 2002년 6월 18일에 태어났어요. 한일 월드컵으로 온 대한민국이 열기에 휩싸여 있을 때였지요. 몽이는 이웃집 강아지였어요. 다른 동배 아이들과는 달리 사과만큼 작은 크기로 태어났고요. 모유조차 먹기 버거워하던 조그만 생명은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죽어가고 있었죠. 세상 물정을 몰랐던 대학 시절, 안쓰럽다는 이유 하나로 저는 태어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몽이를 품게 되었습니다.


  처음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 뜻밖의 말을 들었어요. 선천적으로 소화 호흡기 장애가 있어, 조금 일찍 세상과 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시한부 선고였 지요. 그때 저는 맘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제 힘이 닿는 한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줘야겠다고 말입니다. 5차 접종이 채 끝나지도 않았을 무렵, 그렇게 몽이는 저와 함께 대한민국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는 19세 생일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어, 여전히 제 곁에서 꼬리를 흔들어주고 있네요.

 

누구보다 잘 뛸 수 있어, 송이

  송이는 2003년 11월 13일, 전라남도의 ‘진도’라는 섬에서 태어난 진돗개였어요. 모견은 대전에서부터 진도까지 주인을 찾아 돌아온 그 유명한 백구의 후손으로 장래가 밝았던 아이였지요. 호기심이 많은 송이는 눈이 펑펑 온 어느 날, 엄마품을 빠져나와 마당 탐험을 했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고요. 아침에 발견된 송이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동상에 걸려 왼발을 잃었고, 오른쪽 발가락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당시 진도에서는 천연기념물 보존 차원에서 온전한 상태의 진돗개만을 키우고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고작 2개월 된 강아지 송이는 저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송이의 왼발 상처는 지금까지도 쉽사리 아물지 않습니다. 땅에 닿을 때마다 살이 쓸리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송이는 기특하게 뛰어노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늘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디고, 높은 산도 거침없이 척척 올라가는 강아지랍니다. 

 

나를 어루만지는 너희의 몸짓

  어느덧 몽이와 송이도 노견이 되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다 보니, 첫 만남 때부터 이별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기에 마지막이 두렵지 않을 줄 알았어요. 허나 이별은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함께한 시간이 깊고 진할수록, 나눈 사랑의 크기가 더해갈수록 더 어렵고 막막해지는 게 이별 같습니다. 그래도 그날은 오겠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일 테니까요. 그래도 적어도 지금,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진 몽이와 송이가 늘 곁에서 평범한 산책을 즐겨주면 좋겠습니다.

  노견의 일상은 잔잔한 호수 같기도 하고 너울이 일렁이는 바다 같기도 합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도 꼬리를 반갑게 흔드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 들어와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든요. 서운하지는 않아요. 그동안 한없이 받은 환대를 이제 돌려줄 때가 된 것일 뿐인걸요. 아이들의 귓가에 대고 고요히 사랑을 속삭이면, 아이들은 스르륵 눈을 뜨곤 잔잔한 속도로 꼬리를 톡톡톡, 가볍게 흔들어줍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 늦었는데도 아이들이 세상모르고 꿈나라에 가 있을 때면 제 심장은 크게 요동칩니다. 코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가슴에 귀를 대고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면 몽이와 송이는 이내 눈을 뜨곤 엄마 왜 그러냐며 발갛게 상기된 제 얼굴을 핥아 줍니다. 

 

세상에 참사랑이 있다면, 

그건 바로 몽이와 송이의 마음이 아닐까요.

 

똑같이 사랑받을 수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진돗개의 삶은 그리 따뜻하지 않습니다. 1미터 남짓 되는 줄에 묶여 평생 외로이 살다 떠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묶여있는 풍경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진돗개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마땅히 사랑을 주어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몽이와 송이를 마음에 들이고 살다 보니 견종이나 혈통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존중해 주는 만큼, 이 아이들은 얼마나 큰 사랑을 보내주는지요. 동물을 반려하는 가정이 늘고있지만, 아직 우리의 인식 수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 같습니다.


  언젠가 이 존재들도 편견 없이 사랑받겠죠? 진돗개면서 노견인 몽이와 송이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 잡지처럼요. 그날이 조금만 서둘러 다가오길 기대해 봅니다.

글 조미선
사진 이응찬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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