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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 우주를 줄게

  • 승인 2021-11-16 16: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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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받아들이는 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님을, 가족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 생각에 변화가 생긴 건 대학 시절 우연히 한 애견 유치원에서 일하면서였다. 여러 강아지를 돌보며 내가 몰랐던 기쁨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유치원 일을 정리한 나는 본가로 향했다. 그리고 가족과 진지한 상의 끝에 가정 분양으로 반려견을 데려오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바로 뿌꾸다.


털 뭉치 그 녀석
  우리가 만난 건 2019년 3월 9일의 일이었다. 말티즈 믹스견인 뿌꾸는 이미 한 번 파양 경험이 있다고 했다. 아마 순수한(?) 말티즈가 아닌 게 이유인 것 같다고. 입양 전이었지만 사진 속 뿌꾸는 작고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했다. 믹스인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이 작은 애를 돌려보냈을까?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지금 뿌꾸를 데리고 있다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걸렸다.

  “파양하실 거면 꼭 저한테 다시 주세요.” 직접 만난 그 사람은 에코백에 넣어 온 뿌꾸를 보여줬다. 사진 속에서 본 강아지가 아닌 줄 알았다. 몸집은 훨씬 컸고 얼굴엔 붉은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알고 보니 뿌꾸가 훨씬 어릴 때 찍은 사진을 게시판에 올린 것이었다. 분양 사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에코백에서 나와 내 손 위에서 불안에 떠는 그 강아지를 보자 마음이 울컥했다. 알고 보니 뿌꾸를 데려온 분은 강아지와 고양이 총 12마리를 혼자 돌보고 있으시다고 했다. 그곳보다는 우리 집에서 막내로 듬뿍 사랑받으면서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뿌꾸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너를 위해서라면 뭔들 

  온 정성을 다해 뿌꾸를 돌봤다. 피부가 원래 예민한 탓인지, 아니면 전 주인의 관리 소홀 탓인지 피부염과 식이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해 몸을 긁었던 너. 얼굴 전체가 눈물 자국으로 붉었던 너. 병원에 가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약용 샴푸로 목욕도, 눈 마사지도 꾸준히 해 주다 보니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뿌꾸가 두 번째로 미용을 받은 날이었다.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 외출 중이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뿌꾸가 미용을 받고 집에 돌아온 뒤 꼬리는 축 늘어뜨리고 구석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돌아와 뿌꾸의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군데군데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미용사로부터 아무런 말도 전해 듣지 못했던 터라 화가 났다. 전화기 너머 미용사는 오히려 다소 높은 목소리로 “애가 예민하다” “상처가 난 줄은 몰랐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강아지 미용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이제는 꽤나 익숙해지고 손놀림도 부드러워져 뿌꾸도 맘 놓고 미용을 받고 있다. 심지어 클리퍼 날을 갖다 대도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뿌꾸야. 너를 위해서라면 배우는 것도 즐겁단다.

 

새하얀 눈 속 새하얀 너

  두 번째 맞는 겨울이다. 얼마 전엔 눈도 꽤 예쁘게 쌓였다. 덕분에 뿌꾸도 눈 속에 폭 파묻혀 재미있게 놀았다. 네가 펑펑 내리는 눈을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얼음처럼 차가운 눈을 그 작은 젤리로 밟으면 시려울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고 아주 신나게 뛰어놀았다. 같이 눈사람도 만들고, 눈으로 공도 만들어 놀기도 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날이었다. 다음 겨울에도, 그다음, 또 그다음 겨울에도 이렇게 눈이 내리면 좋겠다. 그렇게 매해 겨울 눈 속에서 행복해하는 뿌꾸를 보고 싶다.

 

떴다! 동네 인기스타 뿌꾸

  어릴 때 12마리의 다견 다묘 가정에서 지냈기 때문일까? 뿌꾸는 사람보다 강아지 친구들을 더 좋아한다. 뿌꾸가 애견 카페나 애견 운동장에 떴다 하면 곧바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하기 바쁘다. 서로 장난도 치고 잡기 놀이도 하며 금세 인기스타가 된다. 한 번은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을 한 적이 있다. 스튜디오 사장님네 강아지가 뿌꾸와 장난치며 뛰어다니자,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얘가 나이도 있어서 이렇게 뛰어다니는 애가 아닌데… 뿌꾸가 정말 좋은가 봐요.” 어딜 가든 자신감 뿜뿜, 역시 우리 뿌꾸, 친화력만큼은 최고구나!

  나도 그런 뿌꾸가 좋다. 견종이나 성격에 관계없이, 그냥 뿌꾸가 뿌꾸라서 좋다.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랑한다는 말도 뿌꾸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또 하게 된다.

  뿌꾸야,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만들어줄게. 우리 가족이 너만을 위한 보디가드가 되어 줄 테니까, 앞으로도 쭉 행복하기만 하자. 너에게 우리밖에 없듯이, 우리에게도 오직 너뿐이니까.

글·사진 서민정
에디터 이혜수


해당 글은 MAGAZINE C 2021년 2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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